“네 죄를 네가 알렷다!” “아이고! 사또. 쇤네를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지난 주말 찾은 한국민속촌 민속마을 관아에서 사또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올 한 해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동시에 점령한 사극의 인기를 타고 한국민속촌이 제3회 사극 드라마 축제를 열고 있었다.

한데 여느 때 같으면 한 번 되뇌고 지나칠 ‘네 죄를 네가 알렷다’가 비수가 돼 가슴팍에 박혔다.

왕조시대에 얼마나 많은 무고한 백성이 이 같은 원님식 재판에 곤욕을 치렀을까, 당시 군왕은 이 황당무계한 추궁으로 얼마나 많은 정적들을 망나니의 칼 앞에 내동댕이쳤을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쳐서다.
생각은 꼬리를 물었다. 창의력 시대, 감성 시대, 디지털 시대 등등으로 지칭되는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는 과연 이 어이없는 호통에 유린당한 적이 없을까.

제아무리 법 없이 살 사람일지라도 밑도 끝도 없는 이 호통 앞에선 유년시절 이웃집 콩서리 한 기억 정도는 떠올리게 마련이다. 바로 이거다. 이 추궁은 ‘털어서 먼지 안 날 사람 없다’는 불변의 진리를 교묘히 노리고 있다.

겉보기엔 상대방의 잘못을 추궁하는 듯이 보이지만 속내는 ‘네 죄를 내가 모르니 네가 알아서 얘기하라’는 거다. 예를 들면 이렇다.

한 여자가 단단히 화가 나 있다. 그녀 앞에서 한 남자는 한없이 초라해진다. 여자의 화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사과를 하고 싶지만 뭘 잘못했는지 알지 못한다. 잘못을 꼬집어 주면 좋으련만 그녀는 ‘내가 왜 화났는지 몰라?’하는 식이다.

최근 용인시 공직자들이 이런저런 구설에 휘말리고 있다. 혹자는 개발행위 허가 과정에서 금품을 수수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고, 혹자는 공직자로서 자질에 의심이 간다는 투서의 당사자가 되기도 했다. 사실관계는 명확히 밝혀야 한다. 하나 ‘네 죄를 네가 알렷다’식은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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