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소극적인 학생이었습니다. 혼자서는 가게에서 물건도 못 살 정도로 숫기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학교에서 친구도 많지 않았겠지요.

그러던 어느 날 음악을 좋아하셨던 부모님과 함께 어느 합창음악회에 가게 됩니다. 그 소년은 거기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합창의 아름다운 선율과 하모니에서 큰 감동을 느끼게 됩니다.

지휘자의 동작 하나하나에 유기적으로 반응하는 단원들과 반주자의 진지한 모습, 그리고 음악을 진정으로 즐기는 그 현장이 그 후로도 오랫동안 이 소년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2시간의 연주회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어머니에게 ‘자신도 저렇게 노래를 잘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교회 합창단 입단’을 권합니다.

이듬해 중학생이 된 그 소년은 교회 합창단 활동을 하게 되고 거기서 발성도 배우고 노래를 열심히 합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학교를 대표하는 중창단원으로 활약합니다.

그러고 대학교에 가서는 학교 합창단 단원으로서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지휘자가 돼 합창단을 이끌게 됩니다. 학창 시절에 함께한 음악활동을 통해 그는 성격이 바뀌게 됩니다. 소극적이었던 성격이 적극적으로 변화됐습니다. 수많은 무대 경험이 큰 도움이 된 것입니다.

그는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차에 무대에 서는 것이 자신의 적성에 맞는다는 것을 깨닫고 방송사 시험을 준비했고, 결국에는 천신만고 끝에 방송사 아나운서가 돼 지금까지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 소년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그 소년이 바로 저, 원기범입니다.

그러니까 어렸을 때 한 합창단 공연에 갔던 것이 성격을 바꾸고 궁극적으로는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됐던 것입니다. 외람되지만 이렇게 제 이야기를 꺼낸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때 그 합창단이 바로 윤학원 감독이 이끌었던 대우합창단이었습니다.

인천시립합창단 윤학원 예술감독의 퇴임 연주회가 지난 10월 말 열렸습니다. 연주회에서는 그동안 큰 히트를 쳤던 곡들을 연주하고, 영상으로 지난 20년의 세월을 돌아봤습니다.

그리고 인천시립합창단을 거쳐 간 역대 단원들과 대미를 장식했습니다. 윤학원 감독은 인천 출신입니다. 동인천중·고등학교 음악교사를 거쳐 1970년대 선명회 어린이합창단을 세계적인 반열에 올려놓으며 합창지휘자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한국마드리갈합창단, 대우합창단, 서울레이디스싱어즈 등을 세계적인 합창단으로 성장시키며 합창계의 거장으로서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그 이후 고향인 인천에 돌아와 인천시립합창단을 맡아 세계 최고의 합창단으로 성장시켰습니다. 수많은 세계 유수의 합창경연대회에서 최고상을 수상하고 격찬을 받은 것이 그 증거입니다.

대한민국을 넘어 전세계에 인천이라는 이름을 알리는 역할도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모 방송사의 ‘남자의 자격’ 청춘합창단의 지휘자 가수 김태원의 멘토를 맡으며 합창의 아름다움을 전국에 알리기도 했습니다. 여담입니다만, 김태원 씨가 퇴임 연주회에 깜짝 출연하며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윤학원 감독이 늘 강조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불통의 우리 사회에는 그 어느 때보다 ‘합창’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잘 아시는 대로 합창은 옆 사람의 소리를 잘 듣는 것으로 출발합니다.

 옆 사람과 옆 파트의 소리를 듣고 음량을 조절하고 화음을 맞추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불협소음(騷音)’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려면 배려와 양보가 있어야 합니다.

자기 목소리만 크게 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를 이뤄야 아름다운 화음(Harmony)이 만들어집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요? 윤학원 감독은 퇴임했지만 인천은 그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저녁에는 인천시립합창단의 음반이라도 들어야겠습니다. 오늘의 과제입니다.

합창에서 아름다운 ‘화음’을 만드는 것처럼 바람직한 소통에는 어떤 하모니가 필요할지 생각해 보고 실천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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