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書經)의 상서(尙書) 중훼지고를 비롯해 중국과 한국의 여러 문헌에 도탄지고(塗炭之苦)라는 말이 나온다.

하(夏)나라의 걸왕(桀王)이 요염한 미녀 매희(梅姬)에게 현혹돼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향락 속에 폭정(暴政)을 일삼다가 상(商)나라 탕왕(湯王)에게 망했다. 그러나 탕왕은 상을 세운 후 무력 혁명으로 왕위를 얻은 것을 부끄럽게 생각해 “나는 후세 사람들이 내가 한 행동에 대해 구실을 삼을 것이 두렵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신하인 중훼가 “하늘이 백성을 내신 것은 그 하고자 하는 바가 있는 것으로, 임금이 없으면 곧 어지러워지고, 오직 하늘이 총명함을 내시어 그로써 다스리게 하신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이어 “하(夏) 나라는 덕이 부족해 백성들이 도탄에 빠졌기 때문에 하늘이 곧 왕에게 용기와 지혜를 주고 만방에 올바름을 나타내게 하며, 우왕 때의 아름다운 관습을 복구하게 했으니 그 떳떳함을 따르고 하늘이 시키는 바를 따르셔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도탄지고’는 흙탕물과 숯불에 빠진 참혹한 백성들의 고통을 이르는 말이다. 이처럼 백성들의 고통을 없애고 괴로움에서 구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한 것은 정당하며, 모름지기 임금은 하늘을 대신해 백성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정치권은 도탄에 빠진 민생을 외면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제안한 신혼부부 임대주택 지원 정책을 둘러싸고 정치권이 공짜·무상을 뜻하는 것이냐 아니냐를 놓고 또다시 공방을 벌이고 있다.

무상보육, 무상급식 논란에 이어 신혼부부 집 한 채 말 바꾸기 공방까지 예산정국과 맞물리며 복지정책을 둘러싼 여야 대립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또 4대강 사업과 자원외교, 방산 비리 의혹 등 이른바 ‘4자방’ 국정조사를 둘러싸고 야당은 당장 실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여당은 정기국회 이후에 하자는 입장을 보이는 등 정치권 대치가 깊어지고 있다. 4자방 국정조사와 예산안을 맞바꾸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정치권이 당리당략의 진영논리에 빠져 도탄에 허덕이는 민생을 외면한 채 소모적인 공방만을 이어가고 있는 사이 국민들의 고통과 시름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현재의 정치권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삶에 대한 불안감과 정치권에 대한 불신도 이제 극에 달했다. 국민들은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한 민생정치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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