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간 제(齊)나라 정치 고문이던 맹자가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말발이 영 먹혀들지 않자 낙향을 결심했다. 이에 제나라 선왕(宣王)은 거액의 봉록(俸祿)을 제안하며 만류했다.

그러나 맹자는 추호의 흔들림도 없이 이렇게 말한다. “어느 천한 사람이 시장이 한눈에 보이는 깎아지른 듯한 높은 언덕(壟斷)에 자리잡고 시장 전체를 내려다보며 귀한 물건들이 있는 곳으로 왔다 갔다 했습니다.

결국 귀한 물건들을 모두 바꿔 시장의 모든 이익을 독차지하게 됐습니다. 이에 사람들이 그를 비난하자 관리도 이 사람에게서 세금을 징수했습니다. 이것이 상인에게 세금을 물린 계기가 됐습니다.” 결국 맹자는 자신만 받는 거액의 봉록을 농단에 비유하며 거절했다. 여기서 유래된 말이 ‘혼자서 이익을 독차지하거나 폭리를 취한다’는 ‘농단’이다.

세계일보가 최초 보도한 ‘정윤회 씨 국정개입 감찰 보고서’ 파문이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급기야 박근혜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를 열어 이 문제와 관련해 명확히 선을 긋고 불 끄기에 나섰다.

박 대통령의 입장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한 가지는 비선실세들의 국정 농단은 결코 없다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문서 유출행위를 ‘국기문란’으로 규정하며 철저히 조사해 일벌백계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방식으론 진화가 될 것 같지가 않다. 박 대통령의 발언 어디에도 비선실세들의 국정 농단 의혹을 조사하겠다는 진상 규명 의지는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야당에서 박 대통령이 검찰 수사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비난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학습으로 알고 있다. 검찰 생리상 대통령이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벗어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을. 화재를 진압하기보다는 ‘불이야’라고 외친 사람을 잡을 것이다.

청와대가 자체 생산한 문건을 스스로 ‘찌라시’라고 폄훼하면서 국정 농단 의혹에 눈을 감는 이유를 알 듯 모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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