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서 ‘사자방’이라고 하기에 처음엔 동물원에 있는 ‘사자 우리’를 일컫는 줄 알았다. ‘호랑이방’, ‘늑대방’이 아닌 ‘사자방’에 무슨 일이 생겼나 궁금했지만 ‘동물원뉴스’에 관심을 가질만한 여유가 없어 기사제목만 보고 내용은 읽어보지 않았었다.

그런데 ‘사자방’이 계속 뉴스에 오르기에 뭔가 살펴봤더니 ‘사자 우리’에 관한 얘기가 아니고 “4대강 사업·자원외교·방위사업”의 머릿글자를 따서 만든 조어(造語)로서 이명박 정부 하의 대표적 비리사건을 지칭하는 것임을 이내 알게 되었다.

그런데, 기사내용을 보니 이것이 단순한 비리 차원을 훨씬 뛰어넘는 ‘전대미문의 혈세낭비 사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 규모가 하도 커서 기가 질릴 정도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사자방비리로 낭비된 혈세가 100조 원에 이른다”고 하면서 국정조사와 검찰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다소 과장된 금액인지는 모르겠으나) 100조 원이라는 돈은 1천만 가구에게 1천만 원씩 나누어 줄 수 있는 엄청난 금액이다.

나는 지난 11월 20일자 본 칼럼난에 “국가배상, 제대로 구상(求償)해야”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었다. 이 글에서 “2008년 이래 금년 7월까지 지급된 국가배상금이 4천544억 원에 달하는데, 이 중 공무원의 고의 또는 중과실로 인해 구상청구된 금액은 79억 원(전체 국가배상금의 1.7%)에 불과하여 너무 미미하다”고 하면서 “공무원의 불법행위로 발생된 손해를 국가가 배상했다면 국가는 응당 책임있는 공무원에게 구상권을 행사해 국민의 세금이 축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었다.

그런데 100조 원이라는 혈세낭비는 지난 약 7년 동안의 국가배상금 총액(약 5천억 원)의 200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이런 엄청난 혈세 낭비를 방치하고서 “불법행위를 저지른 공무원에 대한 책임을 엄중하게 추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완전한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정치인과 고위직공무원의 잘못된 판단과 비리로 낭비된 혈세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은 채 중하위직공무원에 대한 책임 추궁을 얘기하는 것은 형평성 차원에서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인 것이다.

4대강사업 비리와 자원외교 관련 비리도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방위사업과 관련해서까지 비리가 만연된 것을 생각하면 세금 내는 국민으로서 정말 분통터질 일이다.

 이래 놓고서도 ‘국방이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만약 전쟁이 발발했을 때 불량품질의 군사장비로 무장한 아군병사들이 적과 맞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피를 흘리며 쓰러질 것을 상상하면 정말 소름끼칠 노릇이다. 이런 행위는 형법상 ‘이적죄(利敵罪)’(제99조)의 구성요건해당성(대한민국의 군사상 이익을 해하거나 적국에 군사상 이익을 공여한 행위)을 넉넉히 충족한다고 본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진리이다. 정치인과 고위공무원을 비롯한 사회지도층의 비리를 척결하지 않고 중하위직 공무원의 비리와 서민들의 생계형 범죄만 엄단해서는 ‘법적 정의’가 제대로 설 수 없고 사회질서가 제대로 잡힐 수 없다.

이참에 국가의 기강을 바로 세워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전임 정부인 이명박 정부의 비리를 눈감아 주려고 해서는 절대 안 된다. ‘사자방’비리를 철저히 파헤쳐서 책임자들을 엄단함으로써 국가기강을 바로 세우는 것만으로도 박근혜 정부의 성공적 업적이 될 수 있다.

 지난 정부 하에서 이뤄진 일이라고 해서 이를 묵과하려 한다면 오히려 이명박 정부와 공범으로 비난받을 우려가 크다.

최근 새누리당 이인제 최고위원, 정두언 의원, 박민식 의원 등이 야당의 국정조사 요구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등 여당 내에서도 철저한 조사에 찬성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정부·여당은 적극적 자세로 국민적 의혹을 풀어나가고 책임을 물을 일이 있으면 책임을 물어야 앞으로 ‘혈세 낭비’가 재발되지 않을 것이다. 결단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비리를 파헤치는 데 정치적 고려가 따로 있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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