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느 마을에서 타인의 음식을 구걸하면서 그날그날을 보내는 바라문이 있었다. 그는 집에서 너구리 암컷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이 너구리가 새끼를 낳았다.

자식이 없던 바라문은 이 새끼를 자기 자식처럼 사랑했고, 너구리 새끼 역시 그를 친아버지 같이 생각하고 따랐다. 매일 우유며 떡이며 고기를 얻어 먹이며 이것을 낙으로 삼고 살던 중 아내가 사내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여전히 너구리 새끼를 사랑했다.

어느 날 남편이 집을 나간 후 바라문의 아내는 아기에게 우유를 주고 그릇을 얻으려고 이웃집에 갔다.

우유 냄새를 맡은 독사 한 마리가 집 안에 침입해 큰 입을 벌리고 독을 토하며 아기를 잡아 먹으려 했다. 이때 아기 곁에 있던 너구리가 독사와 싸워 죽인 후 독사를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너구리는 독사를 죽이고 아기를 살렸다는 칭찬과 함께 귀여워 해 줄 것을 생각하고 입 주위에 독사의 피를 묻힌 채 아기 부모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구걸에서 돌아온 바라문이 집 앞에서 자기 아내를 만나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방으로 막 들어가려는 찰나 문 앞에서 입이 피투성이가 된 너구리가 있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

그들은 집에 없는 동안 너구리가 자기 아들을 잡아먹은 줄 알고 노기가 충천해졌다. 그래서 너구리를 지팡이로 힘껏 내리쳐서 죽여 버렸다.

그러나 그들이 집으로 들어가자 잡혀 먹힌 줄 알았던 아들은 놀고 있고, 한 마리의 독사가 죽어서 갈기갈기 찢겨 있었다.

바라문은 자기 아들의 목숨을 구한 사실도 모르고 무참하게 너구리를 때려 죽인 것을 후회했다. 그리고는 땅에 엎드려 큰소리로 울고 자기의 죄를 뉘우쳤다고 한다.

지난 주말 아내와 함께 이천 설봉산 정상 가까이에 자리잡은 천년고찰인 영월암에 갔다가 그곳에서 읽은 부처님의 말씀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경솔하게 생각하고 판단을 하게 되면 되돌릴 수 없는 크나큰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직업 특성상 남의 이야기를 논해야 하는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명심, 또 명심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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