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에 눈이 내린다. 겨울에 접어든 후 몇 번째 내리는 눈인지 모르겠다. 제법 탐스럽게 내리는 눈을 보면 아직도 가슴이 설렌다. 몇 시간 후 벌어질 도로에서의 교통대란과 지저분한 차 꼴은 그때 정신차려 봐야 알겠지만 지금은 하늘에서 소리 없이 내리는 눈송이를 보면서 추억에 잠긴다.

오늘 내리는 눈이 첫눈은 아니지만 대개들 눈에 대한 추억이 한둘쯤 있다. 가장 흔한 게 첫눈 오는 날의 약속이다. 사랑하는 연인과 겨울에 하는 약속은 뻔하다. 첫눈 오는 날 몇 시에 어디서 만나자는 다소 오글거리는 약속이지만 연인 사이에서 이보다 참신한 약속은 없다.

지금 당장 사무실에서 뛰쳐나가 눈을 뚫고 아무 커피숍이라도 들어가고 싶다. 머리에 내려앉은 눈을 털고 커피의 진한 향을 맡으며 제법 분위기 잡을 때쯤엔 아마 이런 음악이 흘러나왔으면 하는 상상을 해 본다. 예전에 ‘밤을 잊은 그대에게’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 디제이 이종환이라면 이 노래를 선곡했을 것 같다.

“눈이 내리네. 당신이 가 버린 지금. 눈이 내리네. 외로워지는 내 마음. 꿈에 그리던 따뜻한 미소가 흰 눈 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네. 하얀 눈을 맞으며 걸어가는 그 모습. 애처로이 불러도 하얀 눈만 내리네.” 언제 들어도 포근한 노래다.

한때 ‘돈 벌어 나죠’라는 우스개 제목으로 불린 샹송 ‘돔블 라네즈’의 번안곡으로 어떻게 눈을 이별과 외로움 그리고 사랑하는 이의 따뜻한 미소로 연결시켰는지 들을수록 아름다운 노래다.

올해는 유난히 눈이 많을 거라고 한다. 또 오늘 눈이 내린 후에는 시베리아 찬공기가 한반도로 남하하면서 이번 겨울 들어 가장 강력한 한파가 시작된다고 한다.

도시에서 눈을 대하는 따뜻한 설렘은 오래 가지 못한다. 눈 덮인 하얀 세상은 곧 염화칼슘과 뒤엉킨 지저분한 도로에 미끄러진 차로 엉킨 교통지옥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상은 흘러간다. 아름다움이 영원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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