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난생처음으로 ‘그분’과 소주잔을 기울일 기회가 있었다. 그와 알고 지낸 세월이 강산이 한 번 변할 정도여서 그의 삶의 궤적을 대략은 알고 있었다. 하나 그 자리가 없었다면 오늘의 그를 있게 한 원동력이 뭔지 알지 못했을 거다.

그는 적어도 용인지역에서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위치에 있다.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이 대개 그렇듯 그는 그다지 화려한 스펙의 소유자는 아니다. 아니, 초라하다면 초라하다. 그런데 그의 유년시절 기억을 함께 더듬으면서 자연스레 ‘그’가 ‘그’로서 존재하는 이유를 가늠할 수 있었다.

그는 학창시절 공부와는 아예 담을 쌓고 살았단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 탓에 맏형인 그로서는 동생들을 건사하는 일보다 중요한 일은 없었다고 한다. 공부보다는 돈 버는 궁리를 하는 일에 머리를 쓸 수밖에 없었단다. 그렇다 보니 성적은 보잘 것 없었고 선생님들의 눈 밖에 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단다.

기자의 학창시절 때도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공부 못하는 학생은 심부름도 못할 거라는 선생님들의 편견은 그 시절에도 다르지 않았나 보다. 그는 초등학교 입학 이후 중학교 2학년 때까지 단 한 차례도 선생님의 심부름을 한 적이 없었단다.

그가 중학교 2학년이 된 어느 겨울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외지에서 전입해 자취를 하고 계신 여선생님이 그에게 연탄불을 갈아 달라는 심부름을 시킨 것이다.

지금 같으면 그 여선생님은 다음 날로 교단을 떠날 일이었지만 그는 자전거를 타고 쏜살같이 여선생님 자취방으로 내달리면서 그 어느 때보다 큰 희열을 맛봤단다.

이튿날 “덕분에 따뜻하게 잘 잤다”는 선생님의 말을 듣는 순간 ‘해냈구나’하는 성취감이 그의 온몸을 휘감았으리라. “내가 그에게 심부름을 시키기 전에는 그는 다만 머릿수만 채우는 학생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에게 심부름을 시켰을 때 그는 이 사회의 동량이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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