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은 국제연합(UN)이 지정한 ‘세계 반부패의 날’이었다. 그런데 최근 발표된 국가별 부패인식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27위로 최하위권을 면치 못했다고 하니 몹시 부끄러운 일이다.

‘부패(腐敗)’란 ‘썩을 부(腐)’와 ‘무너질 패(敗)’로 이뤄진 단어로서 국가든 조직이든 개인이든 썩으면 무너진다는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다. 영어로는 커랍션(corruption)이라고 하는데 ‘함께’라는 뜻의 ‘cor’와 ‘파멸하다’라는 뜻의 ‘rupt’가 합쳐진 라틴어 합성어에서 유래한다.

부패가 생기는 근본 이유는 ‘인간의 이기심’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인간의 이기적 본성은 제도상의 허점(경쟁 배제, 과도한 자유재량권, 정보의 비대칭성, 책임성·투명성의 결여 등)이 존재하면 언제든지 부패로 발전하게 된다.

그리고 부패가 만연하면 사람들은 정당한 방법을 통한 목표 추구를 포기하게 돼 스스로 부패한 방법을 찾거나 자포자기하는 사례가 증가하게 되므로 결국 사회구성원 간 공정한 게임의 룰이 파괴돼 기본적 신뢰기반이 붕괴되고 사회통합이 와해된다.

말하자면 부패는 공동체 신뢰의 파괴, 자원의 낭비와 경제성장의 저해 등 폐해를 초래하고 결국 기업과 국가의 몰락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인간의 이기심에 기인한 부패를 완전히 없앤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지만, 노력을 기울이면 개선은 충분히 가능하다.

부패 방지의 실천 방안으로는 견제와 균형 시스템의 도입, 시장원리의 강화, 개방화 확대, 정보공개제도 확대, IT기술의 활용, 적발·처벌의 강화, 의식 개혁을 위한 교육·홍보 등이 중요하다. 그런데 부패행위는 은밀하게 이뤄지는 경우가 많으므로, 특히 ‘내부고발자’가 부패 척결의 중요한 계기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내부고발자’란 진실을 밝힐 목적으로 자신이 속한 조직이 저지른 비리를 폭로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영어로는 딥스로우트(deep throat), 휘슬블로우어(whistle-blower) 또는 벨링거(bell-ringer)라고 부르는데, 이러한 용어들에서 알 수 있듯이 내부공익신고는 ‘경고’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말하자면 내부 고발이 활성화돼야 사회의 ‘건강성’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선진국에서는 ‘내부고발자’를 보호하기 위한 각종 제도적 장치를 갖추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2011년 3월 29일 ‘공익신고자보호법’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또한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에서도 부패행위 신고자 보호·보상규정을 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내부고발자’를 ‘배신자’로 취급해 보복하거나 ‘왕따’시키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 아파트 난방비리를 폭로했던 배우 김부선 씨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를 당하는 등 고역을 치러야만 했다. 미국에서는 자기 집 앞의 눈을 치우지 않는 사람, 자기 집 잔디밭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 사람까지도 신고·고발하는 사례가 빈번하다고 한다. 우리 국민들의 정서에 따르면 “이웃 간에 정이 없다”고 비판할 수 있겠으나 실은 이러한 고발정신이 건전한 시민의식의 발로라고 볼 수 있다.

우리 국민들도 ‘내부고발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떨쳐버리고 오히려 이들을 칭찬하는 의식을 지녀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과 같은 고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의 부패를 용인하면 우리 모두가 그 피해자가 될 것이고, 우리 자손들은 더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최근 비상한 주목을 끌고 있는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 파문과 관련해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국·과장의 경질성 인사를 박 대통령이 지시했다”는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발언에 대해 “공직(자)에겐 지켜야 할 도리, 금도가 있다”고 비판했다.

김재원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도 “한 나라의 장관을 지낸 분까지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는 데 동참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과연 유 장관의 발언이 금도를 넘은 것인지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없지 않은데, 이 사건과 관련해서도 ‘내부고발자’ 또는 ‘양심선언’이 뒤를 이을지 지켜볼 일이다. 오직 ‘진실’만이 모두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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