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일간지에 흥미 있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1983년 10월에 있었던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 사이의 전화통화 내역이 공개됐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것은 미국의 레이건도서관이 보관해 오던 것인데 실제 백악관 상황실에서의 대통령 대화가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당시는 미국이 영국의 보호령이었던 그라나다를 침공한 직후였습니다. 대처 총리는 미국의 개입에 반대한 것은 물론이고 미국으로부터 사전에 아무런 통보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매우 격분한 상태였습니다. 레이건 대통령은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했을까요? 통화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레이건 대통령이 먼저 전화를 걸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거기 있었다면 들어가기 전에 모자부터 던져 넣을 거요.” 무슨 말인고 하니 ‘미국 서부개척시대에 어떤 장소에서 사람들에게 환영받을지 알 수 없을 때 모자부터 던져 넣던 관행을 언급한 것’이라고 하는군요. 이 말에 대처 총리가 한결 누그러진 반응을 보였습니다.

대화를 이어갑니다. “당신을 당황하게 해서 매우 유감입니다. 당신에게 얘기하고 싶은 건, 우리 때문이라는 겁니다. 부디 이해해 주세요. 우리 스스로 기밀 유지를 못하는 게 우리의 약점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계속 정보가 새 나가서 골치입니다. 우리가 걱정한 건 당신 쪽이 아니라 우리 쪽입니다.” 그러니까 영국에 미리 통보하지 못했던 것은 정보가 새어 나갈까봐 걱정했기 때문인데, 그것은 영국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자기들 측 문제 때문이었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렇게 솔직하게 설명하자 대처 총리는 화를 누그러뜨리고 레이건 대통령의 부인인 낸시의 안부까지 물으며 화기애애하게 통화를 마칩니다.

영국 BBC방송은 이 대화를 두고 “은막 출신의 대통령이 유창한 언변까지 갖췄다”고 평가했더군요. 사실 레이건 대통령과 대처 총리는 냉전체제 종식을 앞당긴 ‘정치적 동반자’였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만, 그 막후에는 이렇게 일촉즉발의 위기를 돌파한 순간들도 있었다는 것이 밝혀진 것입니다.

미국의 제40대 대통령인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입니다. 20대에 한 라디오방송사의 스포츠 아나운서를 시작으로 영화배우로 이름을 널리 알렸습니다.

 이후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거쳐 대통령에까지 선출된 것입니다. 재임 중에는 구소련과의 군비 확장 대결을 통해 소련의 붕괴를 가져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고 동서 냉전 구도에서 승리를 이끌어 낸 주인공이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미국 경제의 체질 개선을 이룩해 낸 위대한 대통령이었습니다.

미국의 여러 학자들은 미국 역사상 최고의 커뮤니케이터로 레이건 대통령을 꼽습니다. 뛰어난 화술로 소통의 달인이었다는 것입니다.

앞서 통화 내용에서 보듯이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의 분노까지도 잠재우는 소통 능력을 지녔습니다.

자신을 철저히 낮추면서 상대방의 기분도 풀어주는 ‘모자부터 던져 넣겠다’는 말의 기술은 정말 본받을 만합니다. 왜 소통의 달인으로 불렸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물론 거기에 진심이 담겨 있었으니까 통한 것이겠지요. 사람들 사이에 ‘소통이 된다면’ 풀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레이건 대통령에 대한 일화가 또 있습니다. 1981년 3월 한 호텔에서 나오다가 피격당한 레이건이 수술을 받기 전 의료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이 공화당원이었으면 좋겠군요.” 이 말을 들은 의사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지금만은 모두가 공화당원입니다.” 피격당한 대통령을 치료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는 의료진에게 농담을 건넨 레이건이나 최선을 다해 치료하겠다는 뜻을 그렇게 표현한 의사 모두 순간의 긴장을 푸는 위트 있는 대화를 나눴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피격 이듬해에 지지율이 급락하니까 레이건은 걱정하는 참모진들을 위로하면서 “총 한 번 더 맞지 뭐”라고 했다고 전해집니다. 몇 번 강조한 대로 소통의 기본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배려입니다.

 그 마음을 깊이 이해해야 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지금 진심을 담은 소통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필요합니다.

오늘의 과제입니다. 이제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올해 혹시라도 제대로 소통하지 못해 벌어진 사이가 있다면 먼저 다가가 진심이 담긴 말을 건네 보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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