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병국 사회2부
 최근 우리 사회에 심각한 병리적 현상으로 등장한 인명 경시 풍조의 수준이 매우 우려된다. 처참하게 죽임을 당한 것도 모자라 토막까지 당해 비닐봉지에 싸여 하천변 등에 마구 버려지는 주검들을 보면서 적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인간백정 오원춘과 박춘봉 사건에도 모자라 엊그제 또다시 인천에서 여행용 가방에 담겨 버려진 한 노파의 주검이 발견됐다.

도대체 무엇이 이토록 우리에게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덕성마저 내던지게 하는 것일까? 참으로 답답하기 그지없다.

이런 상황에 파주지역에서 내연관계에 있던 70대 재력가를 납치해 청부살인한 뒤 시멘트로 암매장한 모녀에게 최근 법원이 중형을 선고한 사건이 관심을 더한다.

이들 모녀는 지난 4월 11일 오후 4시 20분께 파주시 적성면 자신들의 집으로 A(72)씨를 납치한 뒤 나흘간 굶겼다. 그 사이에 A씨의 신용카드를 빼앗아 3천만 원의 현금을 인출했고, 굶주림과 강박감에 지친 A씨의 목을 노끈으로 졸라 살해하기에 이른다.

이 과정에 만삭의 몸이었던 미국 국적의 딸은 심부름센터 직원인 공범을 섭외해 서울 서초동의 한 빌라로 A씨의 시신을 옮겨 베란다에 이중 벽돌층을 쌓은 뒤 시멘트를 부어 은닉하는 치밀함까지 보였단다.

이런 짓을 한 이유가 “수년간 내연관계를 유지해 온 A씨에게 수차례 폭행을 당한데다, A씨가 다른 여자를 만나 헤어지면서 위자료를 받지 못한 데 앙심을 품고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 변명이라니 기막히다.

결국 지난 22일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에서 열린 1심 선고심에서 담당 재판부는 이들에게 강도살인 및 사체은닉 등의 죄를 물어 문제의 배모(64)씨에게 징역 30년, 함께 범행한 친딸 후쿠시마(24·미국 국적)씨에게는 징역 10년을 각각 선고했다.

“피고인들의 범행 동기가 지극히 비열하고 극악무도하다”며 “밧줄에 묶여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는 고령의 피해자를 노끈으로 10분간 목을 졸라 살해하고 끔찍하게 사체를 은닉한 점 등으로 미뤄 중형이 불가피하다”고 내린 재판부의 주문조차 그저 공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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