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아 금년에도 어김없이 방송사들마다 축하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고, 신문들도 특집기사와 새해 덕담들로 지면을 채우고 있다. 매년 이맘때쯤 되면 손수 정성 들여 만든 카드를 주고받았던 풋풋한 학생시절 추억이 떠오른다.

최근에도 연하장을 주고받는 미풍양속이 지속되기도 하지만 시대 변화에 따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새해 인사를 주고받는 것이 자연스럽게 됐다.

새해가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년 계획을 세우느라 들뜨고 설렌다. 학생들은 학년이 올라가거나 상급 학교 진학을 앞두고 학업에 대한 열의를 다지기 일쑤다. 학부모들은 부쩍 몸집이 커진 자녀들을 대견해 하면서 가계비 수입지출계획을 조정하기도 한다.

취직이나 결혼을 앞둔 청장년들도 저마다 자신의 인생계획을 설계하느라 분주하다. 또한 연세가 드신 분들도 나름대로 건강증진계획, 행복한 생활계획 등을 세우느라 진지해지신다.

국가와 지역사회, 공공기관, 기업 등 각종 영리·비영리단체들도 저마다 활기찬 새해 구상을 위해 골몰한다. 말하자면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영역에서 ‘지난해보다 나은 한 해’를 실현하기 위해, 즉 ‘발전’을 이루기 위해 고민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모두가 고대하는 이 ‘발전’을 이루기 위한 필요요건은 무엇일까? 사람에 따라 저마다 각양각색의 견해를 내놓을 수 있겠지만, 발전을 이루기 위한 필요요건은 ‘인간의 행복 추구’를 위한 ‘계몽(啓蒙)’에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오랜 인류역사의 굴곡을 거쳐 오늘날 우리가 ‘자유민주주의’의 기초 위에서 각자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게 된 것은 17~18세기의 서구에서 시민사회 형성의 추진력이 됐던 ‘계몽사상’에 힘입은 바 크다. 대표적인 계몽철학자인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는 인간을 계몽된 존재로 만들기 위한 두 가지 필수조건을 제시했는데, 그 하나는 「에밀」에서 제시한 ‘교육’이요, 다른 하나는 「사회계약론」에서 제시한 ‘자유의 법질서’이다.

그는 “사회계약은 만인이 동등한 조건에 대하여 의무를 지고 만인이 동등한 권리를 향유하는 평등을 시민 사이에 확립하는 데 있다”고 말했는데, 그의 견해를 고려하면 ‘발전’이란 ‘자연상태(본능상태)로부터 시민상태(법적상태)로의 이행’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이해될 수 있다.

또 다른 대표적 계몽철학자인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계몽이란 인간이 스스로 미성숙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라며 인간에게는 동물성(Tierheit)과 인간성(Menschheit)이 있는데, 인간성을 지속적으로 계발(enlightenment)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는 지금 계몽된 시대에 살고 있는가(Leben wir jetzt in einem aufgekl?rten Zeitalter?)”라고 자문하고는 이에 대해 “아니다. 우리는 아직도 계몽의 시대(계몽이 진행중인 시대)에 살고 있다(Nein, aber wohl in einem Zeitalter der Aufkl?rung)”고 자답했었다.

이처럼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와 평등’에 대한 새로운 ‘자각’을 일깨운 계몽사상을 원동력으로 해 중세절대국가가 몰락하고 근대시민국가가 형성됐는데, 영국의 법학자이자 사회학자였던 메인(Sir Henry Maine, 1822~1888)은 이러한 역사의 발전을 “신분에서 계약으로”라는 말로 상징적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그러면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의 ‘계몽수준’은 현재 어느 정도에 도달했는가? 일제강점기를 벗어난 지 70년이 지나는 동안 (타율이 아닌 자율에 의해)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계몽수준’을 얼마나 높여 왔는가? 그리고 새로 맞은 2015년 한 해 동안에는 또 얼마만큼 ‘계몽수준’을 높일 수 있을 것인가?

우리 사회의 진정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경제성장 외에 계몽수준의 상승(특히 다른 사람의 생각과 태도를 존중할 줄 아는 관대한 시민의식 함양)이 필요하다.

‘계몽수준’이 낮은 국민에게 모든 선진적 제도는 ‘사상누각(砂上樓閣)’일 뿐이므로, 금년 한 해 동안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부단히 계몽해야만 한다. 부연하자면 발전의 필요요건은 ‘계몽’이고, 계몽은 곧 ‘나와 이웃에 대한 의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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