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여러분께 삼가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저의 졸필이 오늘로 100회를 맞았습니다. 그간 부족한 글에 귀한 지면을 할애해 주신 기호일보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도 형편없다 타박하지 않으시고 좋은 마음으로 읽어 주시고 응원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머리 숙여 고마움을 표합니다.

매번 잘 읽으신다며 조금씩 실천하고 계신다는 여러 열독자들의 반응을 보면서 더 좋은 글을 쓰고자 제 자신을 채찍질하며 지금에 이르게 됐습니다.

세바스찬. ‘세상을 바꾸는 스피치 찬스’라는 꽤 거창한 제목입니다. 단순히 생각하면 ‘세상’을 바꾸려면 ‘내’가 바뀌는 것이 선결 과제라 할 것입니다.

 새해에는 조금 더 소통이 잘 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소통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인 ‘말하기’에 대한 훈련도 더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1만2천 시간 생방송을 진행하면서 연인원 2만2천 명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한 분, 한 분 모두 소중한 만남이었습니다. 아나운서라는 직업이 아니었더라면 평생 옷깃을 스치는 인연조차 없었을 분들입니다. 새삼 직업을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구랍에 인천광역시와 인천도시공사 그리고 각 군·구가 함께한 경인방송 북콘서트의 사회를 여러 차례 맡아 진행했습니다.

「퀴즈쇼」, 「검은 꽃」, 「빛의 제국」, 「살인자의 기억법」 등 많은 베스트셀러를 쓴 소설가 김영하 작가, 「꿈이 있는 아내는 늙지 않는다」, 「언니의 독설」의 저자 김미경 작가,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등 수많은 명시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정호승 시인, 삼치거리 사람들을 통해 공동체의 의미를 되새기려 한 최희영 작가, 그리고 최근 「낭독의 달인 호모큐라스」를 쓴 고전평론가 고미숙 박사까지. 강연을 듣고 인터뷰를 했던 촌각이 퍽 소중했던 유의미한 시간들이었습니다.

그 중 고미숙 박사의 이야기가 특히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날은 체감기온이 영하 20℃ 가까이까지 내려간 혹한이 맹위를 떨친 날이었음에도 열강을 마친 그녀의 얼굴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습니다. ‘몸의 인문학’이라는 주제였습니다.

동서양을 아우르는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과 동의보감이 어우러진 명강의였습니다. 자연은 순환이 이뤄져야 하는데 사람도 예외는 아닙니다.

 제대로 순환되지 않는 것은 죽습니다.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생각만 하고 그것을 말로 적당하게 풀어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마음속에 켜켜이 쌓여 병이 됩니다. 요즘 청소년들의 문제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어 가족과의 관계가 단절된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고이면 썩는 것이 만물의 이치인데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니까 폭력성이 어느 순간 툭 튀어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고 박사는 낭송에서 그 문제의 해법을 찾게 됩니다. 예로부터 동양에서의 교육은 소리를 통해 전승돼 왔습니다. 서당에서 훈장선생님이 ‘하늘 천, 따(땅) 지’하면 그것을 여러 학동들이 큰소리로 따라하는 모습을 떠올리시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그러니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인류 지식의 집합체인 고전들을 소리 내어 읽음(낭송)으로써 말의 순환과 진리에의 접근을 도모하자는 것이 강의의 골자였습니다. 울림이 있었습니다. 제게 선물로 주신 책에는 ‘낭송으로 진리와 접속하라’고 쓰여 있더군요. 요즘은 소리가 사라져 가는 시대입니다.

얼마 전에 선보인 한 공익광고에 적나라한 모습이 들어있습니다. 생일파티에서도, 결혼식장에서도, 맞선을 보는 자리에서도, 그리고 함성이 가득해야 할 스포츠 경기장에서도 모두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자신의 스마트폰 화면만 쳐다보는 모습을 풍자적으로 그렸습니다.

커피숍에서도 전철에서도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의 스마트폰 사용자가 거의 4천만 명으로 전 인구의 80%에 해당되고 1일 평균 사용시간이 3시간 30분이 넘는다는 작년 통계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스마트폰을 어떻게 쓰고 계신지요? 그럴리야 없기를 바라지만 얼굴을 맞대고 서로의 온기를 느끼면서 생각을 나누는 일이 점점 더 과거지사가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인간의 편의를 돕고자 개발된 최첨단 기기가 오히려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 본성에 해가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작년 새해 첫날 한 모바일 메신저 메시지 수가 55억 건이 넘었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국민 1인당 130건이 넘는 양입니다.

하지만 문자로 간편하게 전한 인사보다 여러분의 정감 어린 목소리를 기다리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가 더 잘 ‘말하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품으신 소망 모두 이루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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