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인성 사회팀장

학교에 가기 싫었던 기억이 난다. 친구들과 어울리길 좋아했고, 공부도 곧잘 해 학교생활에 어려움이 없었지만 딱 한 가지 매 맞기가 싫었다. 당시 시험성적에 따라 ‘타작’이 예고된 날이면 더욱 심했다.

마치 지옥에 끌려가는 심정이랄까.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에게 매를 맞은 네 살배기 아이의 마음도 이와 같았을 것이다.

다만 어느 정도 자아가 형성된 청소년기에 겪는 폭력과 이성적 사고가 미흡한, 어찌 보면 본능에 충실한 유아기에 겪는 경험은 엄청난 차이가 있을 것이다.

청소년의 경우 극복해야 할 시련 정도로 여길 수 있지만 유아기 어린이는 폭력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여 또 다른 폭력자가 될 위험성에 노출되기 쉽다.

군대를 다녀온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폭력이 폭력을 낳는다’는 씁쓸하고 아픈 진실에 머리를 끄덕인다면 아이들이 받아들일 폭력의 당위성이 얼마나 위험한지도 수긍할 것이다.

더구나 아이의 의사표현은 어른과 크게 다르기 때문에 자칫 “가기 싫다”는 말이 네 살배기 아이가 떼쓰는 꼴로 보일 수 있다. 상습적으로 학대가 이뤄지더라도 부모의 세심한 주의가 없다면 모르고 지날 수 있는 이유로, 부모의 현실적인 고민이 되고 있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유아심리 전문가는 아이의 행동 변화를 유심히 지켜볼 필요성이 있다고 조언한다. 일면심리연구소 나현지 소장은 “아이는 아이의 언어로 표현한다”고 했다. 아이들의 경우 “가기 싫다”는 의사표현을 말보다는 행동으로 먼저 보여 준다는 설명이다.

밥을 안 먹는다든지 아침잠이 갑자기 늘어난다든지 하는 이상행동이다. 의기소침하거나 작은 일에도 깜짝 놀라는 일이 잦아지기도 한다.

반대로 크게 떠들고 소리지르며 과장된 행동을 보일 수도 있다. 심한 경우 잠자리에 오줌을 싸는 등 평소와 다른 모습을 통해 아이들은 부모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이 경우 부모는 이상행동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쉽지 않은 작업이다. 아이에게 논리적 설명을 기대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스스로조차 무엇이 문제인지 모를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미운 4살의 반항 정도로 여기기 일쑤다. 나 소장은 “무언가를 하기 싫은 이유를 설명할 줄 아는 4살은 없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그들의 언어로 대화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아이의 언어는 놀이를 통해 알 수 있다. 가령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말할 경우 부모는 ‘우리 어린이집 놀이할까’란 대화법을 통해 문제점을 찾을 수 있다.

이때 부모는 “왜 가기 싫으냐? 선생님이 때리느냐? 친구들이 안 놀아주느냐?”식의 다그치는 질문은 피해야 한다. 나 소장은 “놀이의 세계가 아이가 평소 겪는 현실이다”라며 “질문을 통한 사실 확인이 아닌, 놀이를 통한 현재 상황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부모는 ‘어린이집 놀이’를 통해 아이에게 역할을 부여한다. 아이는 역할에 따라 원장이 되기도 하고 보육교사도 된다. 그리고 원생을 돌보는 과정에서 아이 스스로 문제점을 표현한다. 보육교사가 원생을 때린다든지, 골방에 가둔다든지 하는 행위가 그대로 놀이를 통해 재연된다.

나 소장은 “놀이를 통해 아이가 겪는 현실이 인지되면 폭력의 원인이 아이에게 없음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2차 작업이 필요하다”며 “이 경우 아이는 부모가 전달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사고로 전환하지 못하더라도 심정으로 자신의 잘못이 아님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같은 2차 작업은 폭력의 재생산을 끊어내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라고 강조했다. 폭력을 당한 아이가 또 다른 약자를 대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연속성의 고리를 차단할 유일한 방법이라는 설명이다.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낳는 악작용은 아이를 안아주는 부모의 품에서 해소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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