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주말에 지인의 딸 결혼식이 있었다. 추위가 많이 풀어져 내리는 비가 봄비인가 할 정도로 포근했다. 대지를 적시는 비는 생명을 움트게 하는지라 결혼식 날에 비가 오면 잘 산다고, 하객으로 참석한 어르신들이 덕담을 한다. 보슬보슬 내리는 비에 가슴이 촉촉해져 있는데 결혼식이 특별해서 뭉클한 축하 자리였다.

주말마다 이어지는 결혼식 식순이 일률적이다 보니 축의금 봉투를 내고 혼주에게 축하인사를 건네고 나면 뷔페식당으로 바로 가는 경우가 많다.

교장선생님 훈시 같은 주례사를 듣고 있으면 지루한 생각이 들고 사회자의 유쾌한 장난이 지나치면 결혼식장이 개그콘서트장처럼 돼 버려 언짢았던 경험도 있다.

그래서 신랑·신부의 개성은 살리면서 결혼식다운 품격과 진지함으로 새로 부부의 연을 맺는 신랑·신부를 축하하는 자리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오늘 결혼식에는 주례가 없었다. 결혼식장 주례사의 단골 레퍼토리는 훌륭한 집안에서 태어나 훌륭한 부모님 슬하에서 훌륭하게 자란 신랑과 못지않게 양호한 가정에서 양호한 부모님의 가정교육을 받아 재색 겸비한 신부가 부부의 연을 맺어 평생 해로하며 행복하게 잘 살아가라는 과도한 덕담이 주를 이룬다. 주말 예식장에서는 짧으면 30분 길어도 1시간이면 똑같은 순서로 신혼부부를 만들어 낸다.

주말의 황금 같은 시간을 투자해 축하해 주러 온 하객 입장에서는 크게 달갑지 않은 자리가 된다. 안면상·사업상 어쩔 수 없이 참석해서 얼굴도장 찍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기에 청첩장이 매번 반갑지는 않다.

오늘 결혼하는 지인의 딸은 배우자인 남편과 꼼꼼하게 결혼 준비를 해 왔다고 한다. 서른의 나이가 많다고도 적다고도 할 수 없지만 야무지게 인생 설계를 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말 축하해 주고 싶은 결혼식이었다.

3년간 교제하면서 결혼비용, 장소, 혼수 등등 부모 등골 빠지게 하는 일체의 결혼비용을 둘이서 형편에 맞게 차곡차곡 준비를 하고 사회적으로 인지도가 있는 주례를 모시는 대신에 지금의 둘이 있기까지 은혜로웠던 부모님과 진짜 주인공인 본인들이 직접 참여해서 결혼식을 의미 있게 치르자고 약속했단다.

양쪽 아버지의 축사도 마음을 울렸고, 신랑·신부의 다짐도 흐뭇했고, 둘의 인생 설계도 참신하면서 당차 행복한 하객이 되게 해 줬다.

대다수의 지인들이 자녀 결혼을 앞둔 상태라 오늘 결혼식을 보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신부 어머니인 지인은 딸이 야속하다고 피로연장에서 우리 손을 잡고 울먹였지만 예쁘게 잘 커 준 딸을 둔 행복한 엄마라며 박수를 보냈다.

“이래도 되는 거니? 딱 한 달 전에 통보를 한다.” 딸 시집 보내려니 이런저런 지난 일이 떠오르면서 더 잘 해 주고 따뜻하게 품어 줄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오는데 내가 잘 해 준 기억보다 야속하게 했던 모습만 자꾸 생각난다며 딸하고 좋은 시간 많이 만들어 함께 추억 만들기를 하라고 우리에게 당부를 한다.

모든 결혼 준비를 다 끝내고 결혼 날짜 한 달 전에 양쪽 집안 부모님께 ‘축하해 주십시오.’ 인사를 올리는 아들딸이 야속해 부모 능력을 이리 낮춰 면목 없게 만드느냐고 양쪽 부모가 서운해 했다 한다.

양쪽 사돈 서로 자식 잘 키운 공치사를 들을 만한데 부모 입장에서는 인륜지대사인 자녀 결혼에 뒷짐지게 만들었다며 속상하다 한다.

혼수며 예단이며 엄마가 살뜰히 챙겨주고 싶은 게 오죽 많았겠느냐며 신부 엄마의 조바심도, 긴장도 신부 엄마가 누릴 수 있는 권리인데 하나뿐인 딸에게 허망하게 뺏겨 버렸다고 하는 신부 엄마인 지인의 말 속에는 딸 자랑도 들어있다.

시집 보내는 딸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딸과 엄마 사이의 사랑도 확인하고 토닥거리는 언쟁도 덤으로 얻어야 모녀 간의 관계가 더 돈독해지는데, 이 귀한 기회를 날치기당해 억울하다고 하소연이다.

신랑·신부는 자부심 든든하게 새 출발을 했다. 키워 주신 부모님과 살아오면서 성장하는 데 도움을 줬을 주변 사람들에게 신랑·신부를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깨가 으쓱하게 만들어 줘 행복한 결혼식이었다.

새 가정을 꾸며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갈 신랑·신부가 결혼식의 주인공으로 멋진 출발을 했듯이 앞으로 인생도 빛나는 주인공의 삶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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