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지배를 받던 고려시대 때 매를 사육하는 응방이라는 직소가 따로 있을 정도로 매사냥이 성행했다. 원나라에 바쳤던 여러 가지 공물 중 사냥용 매도 포함됐다고 한다.

당시 궁궐에서부터 시작된 매사냥은 귀족사회로까지 확산돼 많은 이들이 매사냥을 즐기는 등 매는 권력과 부의 상징이기도 했다.

이처럼 매를 이용한 사냥이 늘어나다 보니 정성들여 길들인 사냥매를 도둑맞는 일까지 잦아졌다.

때문에 잡아서 길들여 키우고 있는 이들은 매에게 자기의 소유임을 나타내는 특별한 꼬리표를 매의 꽁지 위 털 속에 달아 주인이 있는 매라는 것을 표시했다.

이렇게 하면 다른 매사냥꾼에게 잡혀도 주인이 있으니 놓아 주고, 다른 매를 데리고 사냥을 다니는 사람에게 잡혀도 놓아 줬다.

네모진 모양의 뿔로 만든 꼬리표가 ‘시치미’다. 그러나 시치미를 달고 있는 매를 잡게 됐어도 그 이름표를 떼어 버리고 자신이 잡은 매라고 주장하거나 자신의 이름표를 달고 자신의 매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생겨났다고 한다.

이처럼 누구의 소유임을 알려 주는 ‘시치미’를 떼면 누구의 매인지 알 수 없게 돼 버린다는 데서 ‘시치미를 떼다’는 말이 나왔다. 알고도 모른 척, 하고도 안한 척.

요즘 정치권 안팎에서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여야가 이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다음 달 9∼10일 이틀간 실시키로 합의하고 역대 청문회 중에서 가장 모범적이고 원만히 마칠 수 있길 바라고 있다.

이제는 ‘아니면 말고’식 의혹과 신상 털기 등 인신공격이 남발하는 구태와 당·정·청 간 갈등을 부풀리는 정치질문으로 청문회의 본질을 벗어나는 행태가 사라지길 국민들도 희망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후보자’ 꼬리표를 떼어내기 위한 혹독한 통과의례를 치르고 있는 후보자의 자세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각종 의혹에 대해 신속하게 하나하나 해명하는 이 후보자의 적극적인 태도에 대해 다소나마 바람직하다는 평가가 있으나 제기되고 있는 의혹을 말끔히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절대 ‘시치미’를 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사청문회가 의혹을 들춰 내기 위한 신상 털기나 인신공격이 아닌, 후보자의 국가정책에 대한 의지 및 국정철학에 대해 검증하고 국민이 공감하는 자리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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