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교과서 내용을 '바로잡겠다'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역사왜곡 드라이브가 미국 내에서 역풍을 맞고있다.

아베 총리가 지목한 출판사가 또다시 공개적으로 반박하고 나섰고 미국 언론과 학계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 29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미국 맥그로힐 출판사가 펴낸 교과서에 '일본군이 최대 20만 명에 달하는 14∼20세의 여성을 위안부로 강제 모집·징용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어 정말 깜짝 놀랐다"며 "정정해야 할 것을 국제사회에서 바로 잡지 않아 이런 결과를 낳았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 출판사들을 상대로 조직적 소송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으로 일본 언론은 해석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외교공관을 동원해 교과서를 만든 출판사와 저자들을 설득하려던 1차 시도가 무산되자 이번에는 소송이라는 법적 수단을 동원해 교과서 내용을 바꾸겠다는 2차 시도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상세히 기술하고 있는 미국 맥그로힐 출판사는 30일(현지시간) 아베 총리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반박했다.

맥그로힐 출판사는 30일(현지시간) 연합뉴스의 논평 요구에 "학자들은 '위안부'라는 역사적 사실을 지지한다"면서 "우리는 명백히 교과서 저자들의 저술과 연구, 표현을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또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같은 날 '일본 총리, 미국 교과서가 역사를 왜곡했다고 언급'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역사를 바로 알리려는 한국을 저지하겠다는 아베 총리의 시도는 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NYT는 이어 "한국 정부와 특히 한국교민들은 잘못된 내용을 담은 미국 교과서 바로잡기 운동을 전개하는 동시에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를 미국 곳곳에 세우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이에 맞서 일본 정부는 외교채널 등을 통해 한국의 노력을 저지하려 했으나 결실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일본에서 활동 중인 제프 킹스톤 미국 템플대 교수는 31일 일본 영자지인 '더 재팬 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아베 총리의 교과서 왜곡 시도를 "민망한 외교적 실수"라고 비판했다.

킹스톤 교수는 "미국의 출판업자들은 관련 증거와 학계의 컨센서스가 자신들의 편에 있는데, 왜 일본 정부가 간섭하려는지 의문을 갖고 있다"며 "미국 교과서 내용에 대해, 특히 과거 일본이 전쟁때 저지른 일을 놓고 참견하는 것은 질 수밖에 없는 게임"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일본 정부로서는 불평할만한 근거를 갖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같은 간섭행위는 대외관계의 재앙"이라며 "일본 정부 관리들이 얼마나 섬세하게 자신들의 요구를 표현하더라도 역풍이 불 것이 거의 확실하며, 일본은 결국 전쟁책임을 축소하고 학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침범하려는 것으로 비쳐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가 정확히 얼마나 동원됐는지를 놓고 옥신각신하는 것은 꼴사납다"며 "왜냐하면 이 같은 추악한 시스템은 일본군의 명령과 적극적 참여하에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이것을 다른 식으로 돌리거나 최소화할 방법은 없다"고 잘라말했다.

지난 2007년 위안부 결의안 통과의 주역인 마이크 혼다(민주·캘리포니아) 하원의원은 30일 미국 뉴저지주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아베 총리의 미국 교과서 수정요구에 대해 "비상식적인 행위"라고 비판했다.

혼다 의원은 "아베 총리가 미국의 교과서를 수정하도록 요구한다고 해서 받아들여지지도 않는다"며 "역사적인 사실을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고 반문하고 한국인들이 강하게 맞설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 내의 이 같은 비판론에도 불구하고 아베 총리의 역사왜곡 드라이브가 쉽사리 수그러들지는 미지수라는게 워싱턴 외교소식통들의 설명이다.

한 외교소식통은 "사실상 미국 출판업계와 학자들을 상대로 '교과서 전쟁'을 선포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그만큼 수정주의 역사관이 아베 총리의 모든 것을 형성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이런 가운데 주미 일본대사관은 최근 영문 홈페이지에 난징 대학살과 관련해 정확한 희생자의 숫자를 알 수 없다는 취지의 글을 올려 논란이 되고 있다.

일본 대사관은 "일본이 1937년 중국 난징을 침략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희생자의 실질적 숫자에 대해서는 수많은 이론이 있으며, 일본 정부로서는 정확한 숫자를 판단하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일본 대사관은 작년 초 자체 영문 홈페이지에 배너광고 형태로 게시한 '과거사 이슈' 코너에서 "위안부 사과와 보상을 할만큼 했다"는 주장을 펴 논란이 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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