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팍팍하면 사람들은 점집을 찾는다. 경제적인 문제일 수도 있고, 사람 관계일 수도 있고,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나 간절한 소망을 갈구하는 욕심에 철학관이나 점집을 찾게 된다.

이유야 다양하지만 좋은 운을 기대하는 간절함은 똑같다. 게다가 신년 시작인 정월이면 1년 신수를 묻는 사람들로 이곳은 호황이다.

절기를 중시하는 음력에서는 신년의 시작이 입춘이다. 2015년이 양띠해인지라 입춘 이후에 태어나는 아기는 구정 전이라 해도 양띠로 치는 것이다. 며칠 전에 손자를 본 지인이 있다.

 할머니 된 기념으로 식사 대접을 하겠다고 해서 번개모임을 가졌다. 점심을 배불리 잘 먹고 차를 마시는데 올 신년 신수를 보자는 얘기가 나왔다. 손자 사주가 궁금했던 지인은 적극적으로 바람을 잡는다.

 이미 할머니 눈에는 후광이 눈부신 귀인 탄생이라 새로운 신화를 한 편 써야 할 정도로 찬양과 칭송이 이어져 한 끼 점심으로는 약하다고 한마디 들은 터였다.

여자 다섯이 용하다는 일산 철학관을 찾아갔다. 면적 넓은 아파트에서 철학관을 운영하는 여자는 이지적이고 목소리도 차분해서 학문을 배우는 서원에 온 것 같았다.

거실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고 한 명씩 여자와 독대를 했다. 문이 닫힌 방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긴장감이 돌고, 남아 있는 우리는 어떤 신탁을 받을지 초조했다. 나오고 들어가고 순서가 다가올수록 괜히 벌 받는 학생처럼 주눅이 들었다. 다들 말이 없어서 더 긴장되고 어색한 시간이 흘러 드디어 내 차례가 됐다.

태어난 연월일시를 쓴 메모지를 받아들고 여자는 우리 가족 신수를 봐 줬다. ‘돈 빌려준 거 있지요. 그 돈이 끈 떨어진 연이라 훨훨 날아가는 형상이니 올해도 돈 받기 어렵겠네요.’ 그 말에 화들짝 놀랐다. 벌써 5년도 더 된 일이다.

급하다며 3일만 쓰고 돌려주겠다고 해서 알뜰히 모았던 비상금 탈탈 털어 빌려준 일이 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아예 소식도 없는 이가 있어서다.

가끔 생각나면 속이 쓰리고 매정한 채무자가 미워지기도 했다. 차라리 그 돈으로 밍크코트도 사고, 크루즈여행도 가고, 원하는 대로 써 버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끼고 모은 것이 속상하다가도 세월이 흐르다 보니 ‘그래, 그 돈 없이도 지금까지 살았는데 너 맘인들 편하겠나’ 싶어서 포기하고 있던 돈이다.

그것 외에는 눈 번쩍 뜨일 정도로 굉장한 호재도 없고 비통해 할 액운도 없이 그럭저럭 무탈하게 지나가겠다는 양띠해 신수를 듣고는 방에서 나왔다. 그러니까 별 뾰족한 수가 없으니 돈은 올해도 못 받고 입이 귀에 걸릴 일도 없는 평범한 1년이 되겠다는 말이다.

좋은 얘기만 들었던 이는 없는 모양이다. 별 말 없이 긴 시간 긴장한 채로 있다가 철학관을 나왔다. 운전대 잡고 있던 이가 갑자기 킥킥 웃는다. “에이, 복비는 적선했다 치고 우리 기분 전환으로 드라이브나 합시다.” 그 말에 하나둘 따라서 웃었다.

누구는 아들 교통사고 수가 있으니 조심하라 했고, 누구는 김 씨, 강 씨 성 가진 사람과 돈거래 하지 말고, 누구는 남편 바람 조심하고, 누구는 이동 수 있는데 남쪽 방향이 길하다 하고. 손자 사주는요? 가장 궁금했던 일이라 모두 그이를 바라봤다. “사주는 좋대. 그런데 공을 많이 드려야 하는 사주라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정성으로 복을 빌라고 하네.”

들어보니 특별할 것도 없고 누구나 자리 깔고 앉아서 ‘당신 올 한 해 신수가 이러하오’라고 해 줄 수 있는 내용들이다. 굳이 의미 부여를 하자면 차 조심, 물 조심, 사람 조심하고 열심히 살면 잘 될 것이오.

그러니 엄한 데 눈 돌리지 말고 성실히 사시오. 우리를 계몽하는 말이다. 그래도 자고 나면 온갖 사건·사고로 심란한 세상인데 끔찍한 예언은 없으니 다행이라며 서로를 위로했다.

입춘이 지났으니 신년의 첫 기운이 시작되는 때고, 시작과 더불어 본 신년 신수가 그럭저럭 무탈하다 하니 이것보다 큰 축복이 어디 있겠느냐고 마음 내려놓고 돌아왔다.

남이 들으면 어리석다 할 짓인데도 엄마로 살아온 세월이 길다 보니 내 가족과 주변이 별일 없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기에 음력설을 앞두고 마음을 다독인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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