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나인’(부제-아홉 번의 시간여행) 이후 오랜만에 흥미를 돋운 드라마 한 편이 나왔다. 현재 방영 중인 ‘펀치’다.

겉으로는 시한부 검사가 죽음을 앞두고 부조리와 싸운다는 스토리를 지녔다. 그 자신이 부조리의 중심에 있었지만, 회가 진행되며 왜 그런 선택을 했을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부연 설명(?)이 첨가되며 작가는 그의 선택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특히 이 드라마가 집중도를 높일 수 있던 데에는 주인공의 변화에 ‘매개’가 된 뇌종양이란 질환을 철저히 외면했기 때문이다.

통상 이런 구조의 드라마는 그 매개가 스토리를 방해하게 만드는 경우가 흔하다. 한창 스토리가 전개돼야 할 시점에 갑자기 주인공이 쓰러진다든지 하는 식으로 흐름이 깨지거나 늘어지게 되기 마련이다(물론, 간혹 그러한 장면이 있었지만 극의 흐름 속에 적절했다고 생각된다).

되레 중간중간에는 이를 활용해 부도덕한 검사와 부도덕한 의사 간의 거래라는 또 다른 스토리를 전개해 나갈 만큼 스토리의 탄탄함이 엿보였다.

어쨌든 검사라는 직업에서 벌어지는 암투를 그린 드라마는 ‘선과 악’이 아니라 ‘누가 더 나쁘고, 누가 덜 나쁘냐’는 식으로 흥미를 이끈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에서 드라마와 현실에 대한 고찰이 생겼다.

극작법의 특성상 ‘Bad’한 소재는 재미를 줄 수 있는 여러 구성요소가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단적인 예로 ‘막장 드라마’라 욕하면서도 막상 브라운관 앞을 떠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Good’한 소재는 상대적으로 이러한 구성요소가 약하다. 자칫 ‘다큐’로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Good’을 원한다. ‘성선설’ 혹은 ‘성악설’ 논란을 떠나 이 사회에 더불어 살아가길 원한다면 그럴 것이다.

‘펀치’는 ‘누가 더 나쁘고, 누가 덜 나쁘냐’는 식으로 끝까지 시청자에게 재미를 안기길 바란다. 현실은 ‘누가 더 착하냐, 누가 덜 착하냐’는 식의 논란이 주를 이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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