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첫 방영된 KBS 대하사극 ‘징비록(懲毖錄)’이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며 대박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징비록」은 조선 왕조 최대 위기였던 임진왜란(1592~1598) 당시 전시 총사령관 격인 영의정 겸 도체찰사였던 류성룡이 임진왜란 7년을 온몸으로 겪은 후 집필한 전란 기록이다.

류성룡은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직전 군관인 이순신과 원균을 천거해 선조로 하여금 이들을 각각 전라도와 경상도의 방어책임자로 임명하도록 했으며, 이 중 이순신으로 하여금 임진왜란 당시 열세였던 조선의 전세를 역전시키는 데 공을 세웠고, 죽을 때까지 청렴하고 정직한 삶을 살아 ‘조선의 5대 명재상(名宰相)’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말년에는 북인으로부터 매국노 취급을 받으며 선조에게서 파직당하는 정치적 고난을 겪었다.

이 책에서 보면 조선 제14대 왕 선조는 무능한 임금을 넘어 이 나라에 있어선 안 될 지도자였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선조는 왜란을 당해 한 번도 제대로 싸워 보지 못하고 앞장서서 서울을 버리고 북쪽으로 피난을 갔고, 만주로 행궁을 옮기려다 명나라가 군대를 보내는 바람에 의주에서 발길을 멈췄다.

명군이 남하하며 왜군을 패퇴시키자 선조는 그동안의 비겁함을 덮으려는 듯 누구보다 강경하게 주전론을 펼쳤다. 그 와중에 명장 이순신을 옥에 가두는 실책을 저지른다.

집권 세력이었던 사대부들은 우왕좌왕 제 살길 찾기에만 급급했고, 무신들은 적이 오기도 전에 성을 송두리째 내놓고 도망갔다. 그 결과는 백성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됐다. 국토가 잿더미로 변했고, 죽은 어미의 젖을 빨다가 함께 죽어간 어린이가 부지기수였다고 징비록은 전한다.

국가적 위기 상황을 맞아 지도자들은 때로는 무지와 비겁함에, 때론 흥분과 분노에 휩싸여 사태의 본질을 꿰뚫지 못하기 일쑤다. 임진왜란 때 그랬고 병자호란, 구한말에도 그랬다.

징비록은 철저한 준비로 또다시 이런 치욕을 당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이 때문일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이완구 국무총리와 영의정 류성룡이 자꾸 오버랩되는 것은 기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 같다.

위대한 리더십은 세상의 애환과 어울리며 탄생한다지만 이 총리는 서민의 애환과는 꽤나 멀어 보인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나라에게 내리는 하늘의 응징이 두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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