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현상의 변화를 급류 타듯이 경험하고 있는 우리 사회 중장년층 이상은 급변하는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기가 벅찼다. IT기기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신세대는 입맛도, 사고방식도, 소통 방법도 혁명이었고 웃어른을 공경하고 내 주장을 내세우는 것에 저어하는 우리 세대는 마음이 불편해 갈등이 많았다.

명절에 다양한 연령대의 일가친척이 모이면서 작은 소란이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째 취업준비생으로 있는 손자가 안쓰러워 추임새를 넣던 친척 어르신이 여자들 때문에 이 땅의 남자들이 기를 못 펴고 산다며 마음 상해 하셨다.

좀 억지 같아도 어른 말씀이라 묵묵히 듣고 있는 우리 세대와 달리 젊은 애들은 자기 주장이 똑 부러졌다. 어른에게 민망한 말들이긴 하나 들어보면 질서정연한 논리가 있어서 야무진 아가씨구나 속으로 응원을 했다.

그 아가씨 왈, 세상은 변하고 있는데 아직도 남존여비라니 능력으로 평가는 당연해 기분 좋게 받을 수 있지만 여자가 감히라는 말에는 반감이 생긴다고 한다. 수재에다 예의범절도 깍듯해 속이 찬 아가씨라 생각했는데 공분이 아닌 공감을 만드는 말솜씨가 예뻤다.

보수적인 집안의 딸이었던 나는 ‘여성스럽게, 여성답게, 여자가’로 시작되는 말을 듣고 컸다. 조신하게, 나서지 않고, 섬섬옥수로 곱게, 집안일 돕는 것이 여자로서 갖춰야 할 덕목으로 알고 받아들였다. 성향적인 면도 있겠지만 ‘나대는 여자’로 보일까봐 조심했던 면면도 있다.

그러다 보니 쌓이는 게 많아 화병도 생긴다. 당당한 여성이 로망이면서도 참고 말자, 그래야 분란도 없고 조용하니 내가 희생하자며 이 나이까지 왔다.

시대가 변했다. 논란의 중심이 된 아가씨가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로 있는 셰릴 샌드버그의 책 내용을 인용했다. 실제 현장에서 체감하고 있는 일이라 공감백배라며 신세대다운 말투로 예를 들어줘 직장 다니는 어머니들에게 물개박수를 받았다. 대졸자 비율로 보더라도 여성이 50%를 넘어선 지 오래다. 전문지식과 열정으로 사회에 진입한 여성들이 남성들과의 경쟁에서 좋은 성과를 내는 일이 많아졌다.

지금 세상은 여자라는 성을 떠나 동료로, 협력자로, 때로는 경쟁자로 좋은 파트너라 봐 주는 의식 개혁이 자리를 잡아가는 시기인 것 같다.

요즘은 아이들을 공평하게 교육시킨다. 아들이든 딸이든 편애하지 않고 잘 할 수 있는 자신감과 열정을 기르는 데 부모는 적극적이다. 그런데도 위로 올라갈수록 여성의 자리는 희소하고 경영자나 상급 책임자의 대다수는 남성이다. 교육의 영향이라고 한다.

부모들이 특히 아빠들이, 딸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교육하고 직장 내에서도 여성 동료들이 무엇이든 할 수 있게 지지해 주는 분위기가 있어야 여성의 리더십이 성장한다에 공감한다.

여성은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실패와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강해서 도전에 주저하게 된다고 한다.

세계적 기업인 ‘휴렛팩커드’가 작성한 사내 보고서에 따르면 공개 채용직에 지원하는 남성은 필요조건의 60%만 충족이 되면 나는 잘 할 수 있어 하는 자신감이 생겨 지원을 하는데, 여성은 100% 조건을 갖춰야 지원한다고 한다.

그 일을 하기에는 아직 준비가 덜 됐다며 포기한다는 것이다. 대다수 남성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나는 그 일을 하고 싶어. 일을 하면서 방법을 배워 나가면 돼’로 생각의 전환을 가져오는 진취성을 길러야 한다는 조언이다.

여성은 직무를 충실히 잘 수행하면 누군가가 잘했다며 머리에 왕관을 씌워 줄 것이라 기대하는데 이것을 ‘왕관 증후군’이라 부른다. 열심히 성과를 내는 모습을 남이 인정해 주면 다행이지만 완벽한 능력 위주의 사회는 여권 신장이 높아져 있는 선진국에서도 보편적이지가 않다고 한다. 시대가 변했다.

여성들은 지금이 어느 땐데 꽉 막힌 조선시대 어록을 펼치시나 면박을 주고, 남자들은 달려드는 여자가 부담스러워 나대는 꼴 못 봐주겠다고 시비를 했지만 동등한 조건을 가진 혹은 그 이상의 능력을 가진 여성이 많아진 세상이다.

내가 참으면, 내가 잘하고 있으면 지켜본 눈들이 알아서 왕관을 씌워 줄 것이란 소극적 대응은 그만했으면 한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