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엊그제,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한 친구가 인터넷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사진 한 장을 보여 줬다. ‘드레스 색깔’이란 단어로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까지 오른 바로 그 사진이었다.

처음에는 사진 한 장이 뭐 그리 대수롭나 싶었지만, 이내 갈라진 친구들의 의견에 따라 한 시간 이상 논쟁이 벌어졌다.

 똑같은 사진을 보고 있는데 사진 속 드레스의 색깔은 ‘흰색-금색(갈색)’이라는 주장과 ‘파란색-검은색’이라는 주장으로 첨예하게 대립됐다. 심지어 상반된 의견을 납득하지 못하고 그 주장을 비하(?)하는 발언까지 나왔다.

이는 비단 친구들의 논쟁뿐 아니라 인터넷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언론사에서는 이를 두고 기사로도 내보냈다. 이런 현상이 벌어진 이유는 사람마다 색깔을 인지하는 반응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는 전문가의 의견도 덧붙여졌다.

조금은 다르지만 순간, 색깔과 관련된 개인적인 일화가 떠올랐다.

터키 여행을 하다가 카파도키야에 도착했을 때의 일이다. 열기구가 유명한 지역으로, 아침 일찍부터 투어에 나섰다. 열기구의 풍선 색깔은 다양했고, 여행객들은 저마다 탄성을 질러댔다.

 그런데 일행 중 한 명이 회색 풍선의 우리가 탈 열기구를 보며 색깔이 예쁘지 않다고 투덜거렸다.

이윽고 열기구는 떠올랐고 하늘에 닿을 무렵 그 일행의 투덜거림은 이내 아무것도 아닌 게 돼 버렸다. 눈앞에 펼쳐진 장관은 우리가 탄 풍선이 아니라 다른 열기구의 풍선들이 선사하는 색깔이었기 때문이다.

‘색깔’이라는 단어의 공통점 외에 논점은 다른 두 이야기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사람은 저마다의 색깔을 갖고 있다. 교과서에서 배운 색깔의 명칭은 그저 약속일 뿐 절대적 기준은 아니다.

같은 색깔이라도 각자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권리가 있고, 이를 인정해야 ‘우리’가 온전하다.

그리고 ‘내 것’을 아무리 탐하더라도 ‘나’는 일생 동안 자신을 스스로 직접 볼 수 없다는 것, 그게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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