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남자가 성폭행을 하면 조용히 허락해야 한다.” 성폭행 후 여대생을 살해한 범인이 인터뷰한 내용이다. 인도라는 나라가 여성을 비하하고 여성의 인권이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적 풍토가 있기는 하지만 성범죄자의 말 속에 담긴 왜곡된 의식에 소름이 돋는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니다.

얌전하게 성폭행을 받아주지 않은 여자의 잘못으로 이런 사건이 벌어졌다. 집단성폭행을 곱게 허락했더라면 조용히 버스에서 내려줬을 것이다. 반항했기 때문에 괘씸해서 죽였다’는 말을 태연하게 한다. 영국 BBC방송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상이다.

워낙에 성폭행이 빈번한 인도에서는 세상 여성들의 분노를 사는 성범죄 사건이 많다고는 하지만 또 다른 성범죄자 남성을 변호하는 번호사의 인터뷰도 가관이다. “밤 9시 이후에도 밖에 있는 여성은 누구나 가져도 된다”는 말을 변호사에게서 듣게 될 줄이야. 여성의 희생과 복종과 체념을 미덕이라 우기는 세상은 그만하고 싶다.

3월 8일이 ‘세계여성의날’이었다. 여성·남성으로 성을 나눠도 평등한 대우를 받는다면 필요없는 기념일이다. 처음 발단도 차별받고 무시당하는 여성노동자들의 권리 찾기에서 시작됐다.

1908년 공황으로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과도한 업무와 저임금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던 미국 섬유여성노동자들이 뉴욕 루터거스 광장에서 빵과 참정권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고, 이날을 기념해 유엔에서 ‘세계여성의날’로 정했다.

여성들이 성별·종교·민족의 차별을 두지 않고 여성의 인간다운 권리 찾기를 주장하는 것은 당연한데도 여전히 양성평등은 멀기만 하다.

가혹한 노동 착취와 임신부에게 유해한 작업환경 보완, 산전·산후 8주간 출산휴가 등은 모성에 대한 보호라 여성이 사람으로 대접받을 권리다.

유리천장 이야기도 자주 듣는다. 똑똑한 여학생일수록 사회에 나오면 좌절이 심하다. 멘토로 잘 이끌어 주기보다는 무시와 차별의 펀치를 수시로 날려 의욕을 꺾어 놓는다.

좋지 않은 통계의 선두는 단골인 우리나라인지라 경제협력개발기구인 OECD에서 발표한 통계를 보면 대한민국 양성평등 지수는 115위라고 한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가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발표한 유리천장 지수를 봐도 당혹스럽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의 대학진학률이 남성보다 높은 82.4%인데 유리천장 지수는 조사 대상국 28개국 중에서 역시나 최하위다. 100점 만점에 80점인 핀란드가 1위이고, 평균도 60여 점인데 우리는 턱없이 낮아 25.6점이다.

심지어 여성의 사회적 활동에 제약이 많은 무슬림 국가인 터키의 29.6점보다도 낮다. 임금차별도 크다. 정규직 남녀의 평균 임금 격차도 세계 1위다. 우리나라는 여성이 남성보다 38%나 임금을 덜 받는다는 통계수치다.

인도의 열등한 여성 지위를 보면서 분노하지만 우리 현실도 여성 차별이 만만하지 않다. 가부장적인 사회가 무너져서 남자의 권위가 땅으로 떨어졌다고 남성들은 살맛나지 않는다며 성토를 한다.

과연 그럴까. 맞벌이가 대세인 세상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더 힘들다. 똑같이 직장 다니고 똑같이 돈 버는데도 집안일과 육아는 전적으로 여성의 몫이다. 객관적 평가 자료가 있다.

통계청에서 조사·발표한 내용을 보면 맞벌이 아내가 하루에 집안일하는 시간은 3시간 28분, 맞벌이 남편은 32분만 집안일을 거든다. 아내는 남편보다 무려 6.5배나 더 집안일을 많이 한다.

미취학 자녀가 있는 경우는 더 심해 주부의 하루 일과시간이 9시간 50분이라 한다. 통계만 놓고 보면 여성으로, 딸 가진 엄마로 마음이 답답하다.

남성이 여성을 폄하하거나 차별하는 세상에서 산다고 남성의 행복지수가 상승하지는 않을 것이다. 유엔에서도, 국제사회에서도 21세기를 풍요롭게 만들 힘이 여성인력이라고 했다.

 법적으로 불평등하고 사회적으로 열등한 지위로 내몰지 않고 세상을 새롭게 바꿀 힘을 가진 대등한 동반자로 여성을 인정해 줄 때 남성이 짊어진 짐도 가벼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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