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학년도가 시작돼 활기찬 모습을 보이지만 요즘 전국의 대학들은 내부적으로 많은 고민을 안고 있다. 앞으로 대학에 입학할 학생 수가 급격히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저출산으로 학생 수가 줄면서 2017년부터는 대학 정원이 고교 졸업생 수를 넘어설 전망이다. 현재의 대학 정원 55만9천 명이 그대로 유지되면 2020년 대학입학 정원이 고교 졸업생 숫자보다 10만 명이나 많은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이에 따라 정부가 대학의 구조개혁에 적극 나섰다. 올해부터 5개 등급으로 대학을 평가해 낮은 등급을 받은 대학에 대해서는 정원 감축을 강제하고, 평가 결과가 매우 저조한 대학은 퇴출까지 시키려고 한다. 이를 통해 대학 정원을 2023년까지 16만 명 줄일 예정이다.

말하자면, 구조개혁의 초점은 대학의 경쟁력 강화에 있다기보다 정원 감축을 통한 대학의 숫자 줄이기에 놓여 있는 것이다. 구조개혁을 추진하는 정부의 의도와 고충에 이해는 가지만 몇 가지 의문점도 있다.

첫째, 대학 정원 감축을 ‘정부가 주도해’ 시행할 필요가 있는지 여부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학령인구의 감소는 불가피한 상황이므로 구태여 많은 예산과 행정력을 기울여 대학평가를 통해 정원 감축을 하지 않더라도 대학생 수는 필연적으로 감소하게 된다.

 즉, 시장의 선택에 맡겨도 대학 숫자는 어차피 감소할 것이며, 정부의 감사 기능을 제대로 활용하기만 해도 부실 대학은 정리될 것이다. 현재 정부는 구조개혁 추진 과정에서 대학평가 등을 위해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평가를 잘 받기 위해 컨설팅을 받는 대학도 있는데, 상당한 예산이 컨설팅업체에 흘러가고 있다고 개탄하는 사람도 있다. 대학 구조개혁에 소요되는 예산을 잘 활용하면 ‘반값등록금 실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둘째, 정부 주도에 의한 ‘강제적인 정원감 축’이 바람직한가 하는 점이다. 헌법 제31조 제4항은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정부가 구조개혁을 빌미로 대학을 정부의 통제 하에 줄세우기함으로써 자율성을 침해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런 비판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지난달 25일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대학 정원은 자율적으로 감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교육부 공무원들은 “대학 구조개혁에 대해 늘 강조하는 지론”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고 하는데, 황 부총리의 발언이 비판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립서비스’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교육부의 수장과 실무자 간에 손발이 맞지 않는 것인지 꽤 혼란스럽다.

셋째, 대학 구조개혁 평가지표가 ‘공정하고 타당한가’하는 점이다. 정부에서 마련한 평가지표가 취업률 등을 중시하다 보니 대학들은 취업률이 저조한 기초학문과 인문·예술 분야의 학부를 없애거나 대폭 줄이는 방향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그

런데 21세기는 지식기반경제의 사회로서 무엇보다도 ‘창의력’이 중시되는데, 창의력 배양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기초학문과 인문·예술 분야의 학부를 폐지·감축하는 것은 국가의 미래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또한 인기가 없던 분야가 훗날 각광받는 분야가 된 사례도 자주 있으므로, 현재 인기가 없다고 해서 구조조정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경솔한 판단이 될 수도 있다.

그 밖에도 몇 가지 의문점이 더 있지만 생략하기로 한다. 아무튼 대학생 수의 감소는 오래전부터 충분히 예측가능한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오랫동안 수많은 대학의 신설을 인가해 온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대학을 신설하고 육성하는 데 국민의 혈세인 예산을 투입해 왔는데 이제 대학을 감축하는 데 예산을 투입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더욱이 대학 구조개혁 정책이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은 채로 진행되는 점도 문제다. 현재 국회에는 ‘대학평가·구조개혁에 관한 법(대학구조개혁법)’이 새누리당에 의해 발의돼 있으나 야당의 반대로 원만한 통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평가 등의 행정절차를 진행하는 것은 ‘법치행정주의(法治行政主義)’의 관점에서 문제 소지가 있다. 법적 근거 없이 징수한 기성회비를 둘러싸고 발생한 분쟁과 같은 혼란이 재발하지 않도록 면밀한 사전 검토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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