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활짝 피어서 와.”
그녀의 인사말이 시적이다. 한나절 먼저 햇살이 어딘데 서로 다르다는 요즘의 세대차이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근 10년이나 아랫사람인 그녀인지라 생각도 세상을 보는 시각도 당연히 나와는 달랐다.

 쉽게 친해지는 사교성이 없어서 오래 겪어야 마음이 열리는 나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와 마음을 툭 건드리고 거침없이 팔짱을 꼈다. 수선스러운 표현을 받기가 멋쩍어 그녀의 가벼움에 얼굴을 돌리기도 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은 천진이 부담스러웠던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녀의 밝은 웃음과 수다에 빠져 그 명랑한 기운에 녹고 있는 내가 보였다.

세상과 우아는 조합이 쉽지 않다. 근엄한 가슴은 늘 긴장이라 단단하게 뭉쳐 있고, 희로애락에 태연한 척 감정 표현을 숨기다 보니 무표정이 된다. 세상이 재미없다는 말이다. 흡족하면 거침없이 웃고 속상하면 투정도 부려야 정상인데 감정 골을 즉각 내비치는 것은 경박스럽다 여겼다.

사회에서 만나는 숱한 사람들은 제각기 개성으로 관계맺음에 영향을 미친다. 한참 세월을 살다 보니 민낯이 진솔한 사람이 좋다.

인구밀도 높은 세상이라 부대끼다 보면 알게 모르게 심리적 피해를 입고 입힌다. 그러다 보니 적당한 거리를 두고 관계를 이어간다.

실익이 있나 없나가 관계망 형성에 주류가 됐으니 필요에 따라 원근법 적용 방식을 달리하면서 연이 맺어지고 컴퓨터 화면처럼 사람관계에 삭제도 부활도 쉬운 세상이 됐다.

같은 사무실에서 매일 얼굴을 봐야 하는 동료들 중에 속얘기 나눌 만한 이가 몇이나 될까. 그녀의 솔직과 명랑이 나를 움직이게 했고, 종종 가슴을 열어 서로를 보여 주는 사이가 됐다.

안개가 빠른 속도로 걷히면서 하늘이 맑아진다. 제주도에 내려 애월 바닷가를 달렸다. 꽃샘추위로 움츠러드는 육지보다 봄이 빨라 꽃들이 한창이다. 봄맞이 동행에 보조를 맞추는 꽃들이 예쁘다.

동행한 지인이 주일 예배 참석을 원해 작은 시골 교회를 찾았다. 소박한 교회당에서 마을 주민에게 봉사하며 친절한 이장 같은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다. 신도들 집안의 소소한 사정을 잘 알고 있어서 맞춤 기도를 해 주는 모습도, 남녀노소가 조화로운 10명의 성가대도 감동이었다. 여행길에 찾아 준 마음이 감사하다며 식사에 초대를 받아 웰빙 시골 밥상으로 맛있고 마음이 행복해지는 점심을 먹었다.

세상 모든 것의 생존법이 대형화로 치닫는 시대에 작고 아담하지만 정겨운 시골 교회에서 따뜻한 마음을 받아 이번 여행이 오래 행복한 여운으로 남을 것 같다. 사는 곳의 환경을 탓하지 않고 솔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과 계절을 수긍하며 피어나는 봄꽃들을 보며 마음이 편안해졌다.

자주 아프고 마음도 가라앉아 힘들었던 겨울이 지나갔으니 “언니, 따뜻한 곳으로 봄맞이 여행 한 번 다녀와. 언니가 얼렁 씩씩해졌으면 좋겠어.”

정작 본인은 함께 올 수 없는 사정이 있으면서 통통 튀는 참견으로 제주도를 추천해 준 그녀가 고맙다.

항상 어느 때고 명랑한 그녀의 수다와 참견이 진격하는 봄이 돼 내 마음에 폭죽으로 터진다. 개나리꽃의 선명한 노랑처럼 경쾌한 참견을 날리는 그녀가 있어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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