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병이 있다고 한다. 울화병(鬱火病)으로도 불리는 화병(火病)은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민간에서 사용되는 병명이다. 미국정신학회가 화병을 한국문화와 관련된 ‘분노증후군’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그에 덧붙여 유교적 전통과 참는 것이 미덕이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화병은 우울증·분노조절장애 같은 정신질환과 혼동되기도 하는데, 온몸에 열이 나고 얼굴이 화끈거리며 심하면 만성적 분노로 고혈압이나 중풍 등 심혈관계 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중풍 환자의 30% 이상이 과거 화병을 앓은 적이 있다는 설도 있다.

그래서 화병은 분노의 의미를 담은 화(火)를 제대로 풀지 못해 생기는 병이라고 하는데 대개 시댁이나 친정, 형제 등 가족 간 갈등이 주요 원인인 여자들과 달리 남자들은 직장 내 갈등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그만큼 하루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내는 직장인들은 늘 화병에 시달리고 있다.

한 취업포털이 직장인을 대상으로 ‘화병을 앓은 적이 있는가’라는 설문에 절대다수가 ‘있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화병이 생긴 이유는 상사나 동료와의 갈등이 가장 많았고 과다한 업무 및 성과 스트레스, 인사 불만 등이 뒤를 이었다.

화병을 앓는 직장인 대부분은 만성 피로와 조울증, 탈모, 호흡곤란, 공황장애 등을 경험하고 있으나 대부분 화끈하게 풀어내지 못하고 잠깐 시간 내 동료들과 얘기하거나 점심 또는 저녁시간, 퇴근 후 메신저 등 소극적인 방법으로 털어내고 있다. 그렇다고 화병의 원인을 제공하는 직장 상사나 동료를 붙잡고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직장인들에게 화병은 회사를 그만두거나 다른 일을 하기 전까지 치료하기 어려운 고질병이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자신의 감정을 글로 옮기는 ‘감정일기’를 쓰거나 진짜 힘들 때는 소리 내 우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한다. 산책이나 운동도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이 될 수 있고, 편한 친구와 수다를 떠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직장인에게 화병은 떼어낼 수 없는 그림자 같은 운명이다. 직원이나 상사나 생존의 터전인 직장에서 쌓이는 화병의 무게가 서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웃는 방법을 찾아보고, 자꾸 웃어보자. 그렇게라도 하면 답답한 직장생활이 조금, 아주 조금이라도 즐거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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