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4일은 블랙데이다. 연인이 없는 솔로들이 검은 옷을 입고 모여 함께 짜장면을 먹고 블랙커피를 마시며 외로운 마음을 위로받는 날이라고 한다. 전국 방방곡곡이 꽃대궐인 4월인데, 이 화창한 봄날을 우울모드로 보내야 하는 솔로의 서러움을 풀어주는 이벤트 하나쯤은 있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이런 무슨 데이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매월 14일이면 꼭 무슨 데이가 있어서 1년 열두 달에 달마다 14일이면 있는 날이라 해서 ‘포텐데이’라 부르기도 한다.

관련 업체들은 이런 데이가 가까워지면 열정적으로 영업마케팅을 시작한다. 감성을 자극하는 문구와 영상자료, 이벤트 행사로 극대화된 이윤을 창출해 내기 위해 무슨 데이와 연관이 있는 대상을 특화시켜 집중 공략하는 것이다.

인구는 과밀이지만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사회현상이 사람을 외롭게 만들고 외톨이, 은둔자로 내몰기도 한다. 청년실업 문제로 젊은이의 삶은 팍팍해지고 서로 바빠 함께 밥 먹을 기회도 줄어들면서 가족 간에도 대화 단절이 오고, 가족의 단위가 핵분열해 1인가구가 늘고 있어 의식주는 기본이고 극단의 감정을 치유할 교감과 위안을 받을 창구가 없어지다 보니 심신이 지쳐 자살까지 가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밸런타인데이가 일본 초콜릿 회사의 상술에서 시작됐다고 비판하지만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데이마케팅의 원조는 크리스마스다.

일제강점기에 대다수 국민이 기독교와 연관이 없는 종교를 가지고 있는데도 일본 상인들이 선진 서구 문물에 대한 환상을 감성에 호소해 세련되고 풍족한 계층에 대한 갈망을 자극, 크리스마스 마케팅으로 활용했다. 영업이익 창출거리를 찾는 기업들이 크리스마스로 호황을 누린 과거 경험을 버릴 리가 없다.

이미 검증된 데이마케팅을 이어가기 위한 묘안으로 온갖 데이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 거기에 그럴듯한 스토리를 입히면 사람들은 금방 수긍하며 동참해 줬고, 매스컴에서 조준사격으로 이슈를 만들어 과대 포장해 주니 날개를 달게 된 것이다.

현재 이런 데이 기념일이 1년에 50개가 넘는다고 한다. 그야말로 기념일 홍수 시대다. ‘포텐데이’만 살펴봐도 1월 14일은 다이어리데이로 새해 시작을 기념해 다이어리를 선물하는 날이고, 2월 14일은 밸런타인데이로 여성이 남성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며 사랑 고백을 하는 날, 3월 14일은 화이트데이로 남성이 여성에게 달달한 사탕을 주며 고백하는 날, 4월 14일인 오늘은 블랙데이로 연인이 없는 사람끼리 암울을 상징하는 검은색 옷을 입고 짜장면을 먹고 블랙커피를 마시는 날, 5월 14일은 로즈데이로 장미꽃을 선물하는 날, 6월 14일은 키스데이로 입맞춤을 나누는 날, 7월 14일은 실버데이로 연인들이 은반지나 은으로 만든 선물을 주고받는 날, 8월 14일은 그린데이로 함께 삼림욕을 하며 더위를 식히는 날, 9월 14일은 포토데이로 같이 사진을 찍는 날, 10월 14일은 와인데이로 함께 와인을 마시며 로맨틱해지는 날, 11월 14일은 무비데이로 함께 영화 보는 날, 12월 14일은 허그데이로 몸도 마음도 추운 서로를 안아주는 날이다.

그 외에도 기발하고 재미있는 데이가 많다. 1월 1일은 페어데이로 배 주산지인 나주시에서 시작한 것으로 신년 한 해 모든 일들이 배로 잘 되라고 만든 날이고, 3월 3일은 삼겹살데이, 5월 2일은 오이나 오리고기를 먹는 오이데이, 7월 5일은 추어탕데이, 10월 24일은 에플데이, 11월 8일은 브라데이라고 하는데 브래지어 끈 모양 11자와 가슴 모양의 ∞를 합쳐서 만든 날이다. 11월 11일은 부산의 여중생들이 장난으로 시작한 빼빼로데이인데 농식품부에서 우리 쌀 소비 촉진 일환으로 가래떡데이라고 공식 지정한 날이다.

무수히 많은 기념 데이가 만들어지고 관련 업체에서는 소비를 유도하기 위한 필살기로 홍보전을 하고 있다. 어찌 보면 기업의 얄팍한 상술이라고 외면할 수도 있는데, 이렇게 많은 기념일들을 만들어야 연인이든 가족이든 동료든 서로의 존재를 고마워하고 관심을 주고받을 수 있기에 생겨난 현대인의 교감 프로그램이라는 생각도 든다.

팍팍하고 건조한 인간관계를 말랑하게 채워 줄 무슨무슨 데이를 다 챙기려면 1년이 기념일 홍수로 떠내려가겠지만 마음에 단비를 내려줄 재미있고 행복한 이벤트 몇 개쯤은 챙겨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오늘 ‘블랙데이’를 핑계삼아 어린 시절 먹었던 행복한 짜장면의 추억을 그리워하면서 짜장면 먹는 번개 모임을 하고 싶어진다. “짜장면 땡기는 분 오세요. 제가 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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