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비해 해외에 나가시는 분들이 훨씬 많아졌습니다. 기업의 글로벌화로 출장차 나가시는 경우를 비롯해서 각종 국제회의, 여행 등등 목적은 다양할 것입니다.

외국을 방문하시는 분 누구나 그 나라 언어나 혹은 만국 공용어로 일컬어지는 영어에 능통하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 나라 말을 몰라서 의사소통이 안 돼서 끼니를 걸렀다든가, 길거리에서 화장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든가, 교통편을 이용하지 못해 목적지까지 걸어갔다든가 하는 이야기는 별로 들어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나라 말을 잘 하지 못해도 회의 같은 중대한 의사결정을 제외하고는 일상적인 소통은 대부분 잘 이뤄졌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보디랭귀지(Body Language) 덕분입니다. 우리나라 말을 한마디도 못하는 외국인이 대로에서 어딘가 불편한 표정으로 배를 움켜잡고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다면 십중팔구는 생리적 현상의 해결이 필요한 사람으로 보일 것입니다.

또 손에는 지도를 들고 지나가는 버스 등을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이고 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아마도 길을 찾고 있는 중이거나 교통편에 대한 안내가 필요한 사람이라고 여기실 것입니다. 커뮤니케이션학에서는 이런 것을 일컬어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합니다.

소통의 기본적인 요소는 말과 글입니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의사 전달하는 과정을 유심히 살펴보면 상당 부분은 이러한 몸짓, 표정, 상징 등 비언어적 신호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앞서 살펴봤던 것처럼 말을 잘하지 못해도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이유입니다. 오히려 메시지 자체를 뜻하는 언어적 요소보다 비언어적 요소가 소통에 미치는 영향은 훨씬 더 큽니다. 학자에 따라서는 94%대 6%까지로 보시는 분도 있을 정도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보다 그것을 전할 때의 환경적인 요소 즉 몸짓, 말투, 표정, 태도, 시선 등이 더 큰 효력을 발휘한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전철을 탔을 때의 일입니다. 어떤 사람이 실수로 옆 사람의 발을 밟고는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습니다. 그러자 발을 밟힌 사람이 “아닙니다. 그럴 수도 있지요. 괜찮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저는 그분의 표정을 보고 말았습니다. 말(메시지)과는 달리 말투에는 차가움이, 시선에는 날카로움이, 표정에는 약간의 분노가 감지됐습니다. 소위 말하는 ‘이 꽉 물고’ 대답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니 발을 밟은 사람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제삼자인 저도 느낄 정도였으니 당사자는 아마도 좌불안석이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위의 상황에서 발을 밟은 사람이 “내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뭘 그러느냐”고 쏘아붙인다면 발을 밟힌 사람은 “내가 뭘 어쨌느냐. 괜찮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대거리하게 되겠지요. “당신의 사과를 받아들였다”라고 말은 했지만 비언어적 요소는 전혀 다른 시그널을 보냈기 때문에 갈등이 빚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통사고 잘잘못을 가리는 등 여러 갈등의 현장에서 이야기가 지속되다 보면 나중에는 “그런데 당신 태도가 왜 그 모양이냐”며 본질에서 동떨어진 문제로 번져가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커뮤니케이션(소통), 스피치, 말하기 등의 강의를 할 때마다 ‘소통은 시그널의 문제’라는 점을 힘주어 말합니다. 내가 상대방에게 사랑하는 말을 할 때에는 그에 걸맞은 표정, 시선, 태도, 말투 등으로 해야 오해 없이 받아들이게 됩니다.

나는 초록색 시그널(신호)을 보냈는데 상대방이 빨간색으로 받아들인다면 큰 문제 아닙니까? 교통신호를 생각하시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항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등대의 불빛을 잘못 받아들이면 돌이킬 수 없는 큰 사고로 이어집니다.

영미권에서는 ‘고맙다(Thank you)’는 말을 할 때 톤이 낮거나 표정이 어둡거나 하면 대단한 결례라고 합니다. 상대방에 대한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거나 우습게 여긴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특별히 더 비언어적 요소에 신경을 쓴다는 것이지요.

물론 이것은 그 지역의 문화와도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인간은 감정적 동물이기 때문에 초조, 불안 같은 감정적 요소들은 말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이 알아차리게 됩니다. 소통은 말과 글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비언어적인 요소 (Non Verbal Communication)에 대해서도 공부와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의 과제입니다. 상대방과 대화할 때 나의 표정, 말투, 시선, 태도 등은 어떤지 점검해 보고 개선점을 찾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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