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4월이다. 슬픔과 절망으로 점철된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비웃기라도 하듯 또 하나의 메가톤급 충격과 파장이 대한민국을 흔들어 댔다. ‘성완종 리스트’라는 블랙홀이 국정의 발목을 잡는 것도 모자라 개혁에 대한 희망과 에너지마저 집어삼켰던 한 주였다.

때마침 민노총이 실시한 투표에서는 84.35%가 총파업에 찬성, 24일부터 전국적 규모의 파업이 시작될 예정이라고 한다. 국민이 열망하는 ‘공무원연금·노동시장 구조’ 개혁을 저지하겠다는 것이 핵심 의제다. 한노총도 곧 민노총과 연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얼마 전 한국은행은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1%로 낮췄다. 생산자물가는 3년째 떨어지는 중이고, 소비자물가도 하락세다. 지난해 20∼30대 가구주 가계의 소득증가율은 0%대로 사상 최저치다. 청년실업 증가와 비정규직 등 노동 사각지대의 확대로 소비는 더욱 위축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도 국가부채 증가분의 절반 이상은 공무원과 군인연금 적자 보전에 집행된다. 국가의 위기가 노동시장 왜곡과 공무원연금 실패에서 오고 있는데도 개혁만은 안 된다니, 그러면 무엇으로 헤쳐 나가자는 건지 답답할 따름이다. 실패하면 기다리는 건 디플레이션이다. 디플레이션이 무서운 이유는 불황이 악순환돼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몇 년이면 끝날 것 같았던 일본의 침체가 잃어버린 20년이 됐던 것과 같은 이치다. 일본도 디플레이션 진입 초기에는 불황형 흑자 기조가 지속됐고, 금리를 인하했으며, 부동산 구입을 장려했다. 지금 우리의 데자뷰다.

해결책은 가계소득을 늘려 소비수요를 키우는 것이다. 특별히 저임금 근로자의 소득이 증가하면 수요 회복 효과가 빨라지는데, 이를 위해선 개혁이 수반돼야 한다. 노동시장의 양극화 구조를 무너뜨리고, 혈세를 빨아먹는 공공부문을 구조조정해야 하는 이유다.

그리스 급진좌파연합 ‘시리자’의 집권이 주는 교훈처럼 인기영합적 포퓰리즘이 기적을 만들 순 없다. 더 이상 돌아갈 길은 없다. 정치권이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도 지키고자 한다면 제발 정신줄 놓지 말고 개혁을 주도해 나가기 바란다.

공무원연금 개혁안은 예정대로 처리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해야 하고, 경제활성화 등 중점법안도 이달 내 반드시 처리시켜야만 한다.

양대 노총이 대표성을 갖지 못하고 이해상충의 소지마저 있는 ‘비정규직 및 청년실업 문제’는 차라리 당정 주도로 바꾸는 게 합리적일 듯하다. 야당의 대승적인 협조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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