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은 내전(內戰)의 관점에서 남·북베트남의 1945년부터 1975년간의 30년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의 승자인 북베트남의 입장에서는 19세기 인도차이나반도에 대한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적인 식민지 침략에 맞서서 독립을 쟁취한 ‘항불·항일·항미’전쟁으로 기록된다.

특히 올해는 우리에게 광복 70주년이기도 하고, 한국전쟁 65주년이기도 하다. 그리고 베트남에게는 종전 4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기도 하다.

1975년 4월 30일 북베트남의 승리로 종전된 베트남전쟁에 당시 한국군은 연인원 32만 명을 파병, 베트남전쟁에 깊이 참가했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동맹국인 미국의 참전 요청을 거부할 수 없는 외교적인 상황 가운데 어렵게 참전을 결정해야 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베트남전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해외 파병이라는 한국군의 새로운 전사(戰史)를 썼지만 남베트남의 패망으로 희생의 보람을 상실한 전쟁으로 기억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군이 남베트남을 위해 흘린 피와 땀은 당시 국가 발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점에서 별도의 평가를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북한이라는 적을 상대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켜야 하는 갈급한 시대상황에서 공산주의국가는 우리의 적이었다. 베트남 파병 한국군은 공산 북베트남을 상대로 시대의 정의(Justice)를 실현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싸워야 했던 민주진영의 군대였다.

그러나 전쟁이 그러하듯이 가해자와 피해자가 상존하는 비극적 현실이고, 전쟁이 끝나면 쌍방이 안고 가야 하는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반드시 남아 있다. 과연 베트남전쟁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는가를 재성찰해 볼 수 있는 성숙한 대한민국이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지난 4월 8일 오전에는 베트남전쟁에서 한국군이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증언을 하기 위해 베트남인 응우옌떤런(64)씨와 응우옌티탄(56)씨가 방한, 서울 종로구 견지동에 있는 ‘평화박물관’을 찾아 ‘하나의 전쟁, 두 개의 기억’이라는 사진전에 초대됐다.

두 베트남인들은 지난 베트남전쟁에서 가족들이 한국군에 의해 학살됐다고 주장하는 피해자였다. 그들은 학살피해자의 입장에서 고발하려는 뜻보다는 전쟁의 참혹했던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선의(善意)와 가해자인 한국군에 대해 사과(謝過)의 기회를 주고자 하는 화해(和解)의 메시지를 가지고 왔던 것으로 사료된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반응은 일부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의 극렬한 반대 집회가 계속되면서 주최 측과 베트남 손님들에게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우옌떤런 씨와 응우옌티탄 씨의 증언은 9일 대구 경북대학교 캠퍼스 안에서 강행됐다. 그들은 심장으로 얘기한다는 말로 역사의 진실을 들어달라고 했고, 어떤 원한이나 증오심을 부추기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고도 했다.

 분명한 사실은 자신의 어머니와 오빠 그리고 누나와 친·인척들이 한국군에 의해 참혹하게 죽임을 당해야 했다는 것을 말했고, 참석한 시민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내서 그들의 용기와 아픔을 격려했다는 사실이다.

전쟁과 민간인 학살사건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전쟁터의 비정한 현실이라는 것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무장 군인이 비무장 민간인을 상대로 총질을 한다는 것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반인륜 범죄이기에 반드시 성찰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일본군의 강제성 노예(forced sexual slaves)범죄로 일본을 상대로 사과를 요구하는 우리 사회가 베트남에서 저지른 민간인 학살행위에 대해 공식적인 사과를 주저한다는 것은 모순(矛盾)이 아닐까?

당시 한국군의 고의적인 홀로코스트적인 행위가 아닌 것이라면 이제 우리 사회가 여러 가지 변명의 궤변을 찾기보다 과거 독일의 브란트 서독 수상이 유대인 학살에 대해 무릎을 꿇고 사과한 것처럼 누군가 한국군을 대표해 용기있게 사과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이러한 용기 있는 한국사회의 모습이 바로 한국군의 명예를 지키는 가장 인류애적인 행위로서 일본의 후안무치한 전쟁범죄행위를 더 부끄럽게 만드는 기회도 될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9천여 명에 달하는 한국군 학살피해자 위령비를 세워서 진정성 있는 사과를 보여 주고, 베트남 국민들과의 화해를 통해 베트남 종전 40주년의 의미를 새기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할 것이다.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의 헌신을 조국은 잊지 않듯이, 베트남전 참전용사의 명예는 전투 현장의 과오를 사과한다고 해서 결코 부끄럽게 되는 것은 아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고사성어를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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