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던 두 천사가 어느 부잣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됐다. 이 부잣집에는 좋은 방도 많았지만 지하실의 비좁고 차가운 공간을 내주었다.

딱딱한 마룻바닥에 누워 잠자리에 들 무렵, 늙은 천사는 벽에 난 구멍을 메워 줬다.
다음 날 밤에 두 천사는 아주 가난한 집에 머물게 됐다.

농부인 그 집의 남편과 아내는 그들을 아주 따뜻이 맞아 주면서 자신들이 먹기에도 부족한 음식도 나눠 줬다. 특히 편히 잠잘 수 있도록 자신들의 침대를 내주었다.

그 다음 날 아침, 날이 밝아 농부 내외를 바라보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유는 부부가 우유를 짜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유일한 소득원인 암소가 죽었다는 것.
화가 난 젊은 천사가 늙은 천사에게 따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내버려둘 수 있습니까? 부잣집 사람들은 모든 걸 가졌는데도 벽에 난 구멍을 메워 주면서, 궁핍한 살림에도 자신들이 가진 전부를 우리와 나눴던 이들의 귀중한 암소를 어떻게 죽게 놔둘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자 늙은 천사는 “우리가 부잣집 저택 지하실에서 잘 때 벽 속에 금덩이가 있는 것이 보여서 구멍을 봉해서 부자가 금을 찾지 못하게 한 것이라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어젯밤 우리가 농부의 침대에서 잘 때는 죽음의 천사가 그의 아내를 데려가려는 걸 대신 암소를 데려가라고 했지”라며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네”고 대답했다.

이처럼 우리는 상대방의 의도와는 달리 겉으로 드러나는 형상만 보고 판단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그래서 오해로 인해 상대방에게 큰 고통은 물론 엄청난 상처를 주는 일까지도 있다.

오해가 풀린다면 다행이지만 끝까지 풀리지 않는다면 좌절감을 안겨 주기도 하고 인간관계가 단절되기도 한다.

결국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함부로 해서는 안 되고, 보이는 것에 집착하지 말고 또 다른 이면을 볼 수 있는 안목과 노력이 필요하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