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사는 동네엔 먹자골목이 있다. 제법 손님들의 발길이 잦아 보이는 가게도 비싼 임대료 탓인지 수시로 주인장의 얼굴이 바뀌는 편이다.

언제부턴가 신규로 오픈하는 가게에는 꼭 들르는 버릇이 생겼다. 물론 기존에 있는 50여 곳의 가게도 얼추 서너 바퀴는 돌았다. ‘팔아 줘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새롭게 먹자골목에서 장사를 시작한 주인장의 3씨(말씨·솜씨·마음씨)가 궁금해서다.

최근에도 동네 먹자골목에 입성한 가게 두 군데를 들렀다. 기자와 더불어 먹거리타운 순회 방문을 즐기는 분과 함께였다. 두 군데 모두 30대 후반의 비교적 젊은 친구들이 의욕적으로 장사를 시작한 곳이었다. 동행한 분은 어떤 음식을 먹든지 반드시 찾는 채소가 있었다. 마늘과 고추였다. 특히 기름진 음식을 먹을 때면 필수 아이템이었다.

그날도 그분은 주 메뉴를 주문한 뒤 식탁에 마늘과 고추가 오르지 않자 알바생에게 이들 채소를 부탁했다. 주인장에게 다녀온 알바생의 입에서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동시에 홀 저쪽에서 “다른 곳에서도 오랫동안 장사를 했지만 마늘과 고추를 찾는 손님은 없었다”는 구시렁거림이 어렴풋이 들렸다.

또 다른 가게의 분위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주인장은 10여 년간의 장사 경험을 뽐내며 이 동네 주민들의 소비 성향을 철저히 파악했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그는 메뉴를 추천해 달라는 말에 가장 비싼 것을 권했다. 우리가 귀티나게 보였는지는 모르지만 이건 좀 아니었다.

그가 10년간 장사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적어도 30여 년간 이런저런 음식점을 다니며 별의 별 주인장을 만난 사람들이었다. 누구의 경험이 더 의미있을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얼마 전 단골 가게가 문을 닫았다. 불가피한 사정으로 장사를 접었지만 주인장 내외의 온화한 미소와 넉넉한 인심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치’자를 붙여서야 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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