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세계적인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가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 정부에 대해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벌 중단과 대체복무제 도입을 촉구했다.

국제앰네스티는 “2013년 기준으로 전세계에 양심적 병역거부로 수감된 사람이 723명인데, 이 중 한국인이 669명으로 92.5%를 차지한다”며 오는 11월 1일 세계 평화수감자의 날에 맞춰 세계 각국에서 한국의 대체복무제 도입을 요구하는 탄원 캠페인을 벌일 예정이라고 한다.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 우리나라가 전세계인들에게서 ‘인권후진국’이라는 비판과 조롱을 받고 있으니 부끄럽고도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2일 광주지법 형사5단독 최창석 부장판사는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 김모(29)씨 등 3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헌법에 보장된 양심의 자유와 국방의 의무 등 헌법적 가치가 충돌하는 경우 이를 최대한 실현할 수 있는 조화로운 해석이 필요하다”며 “헌법에서는 국방의 의무보다 양심의 자유가 우선하는 게 적절하다”고 판시했다.

그리고 “정부는 지난 10년간 (대체복무제 마련 등)그 어떤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국방의 의무는 전투원뿐 아니라 경찰 재해방지업무, 공익근무, 사회복무 등 대체복무를 포함한 의미”라며 “대체복무를 수용하면서 그 기간과 근무 여건 등의 부담형평성을 고려한다면 악의적 병역기피자를 가려낼 수 있다”고 밝혔는데,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본다.

남한과 북한이 팽팽한 군사적 대치 상태를 지속하고 있는 현실 하에서 국방의무의 이행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만 국방의무의 이행을 위한다는 이유로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가 침해되는 결과를 빚어서는 곤란하다.

 왜냐하면 ‘양심의 자유’는 양심에 반해 어떤 행위를 강제당하지 않을 자유를 포함하는데, 이는 정신적 기본권 중에서 가장 근원적인 것으로서 인간의 존엄성과 직결되며, 이를 보장하는 것은 민주국가의 기본 임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심의 자유와 국방의무가 조화되기 위한 방안으로 ‘대체복무제’를 마련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2007년 국방부는 대체복무제를 마련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었지만, 이듬해 이명박정부가 들어선 뒤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대체복무제 등 보완책이 없다 보니 2000년 이후 올해 3월까지 징역형이 확정된 양심적 병역거부자만 9천934명에 달한다고 한다.

병역법은 정당한 사유 없이 병역을 거부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고(제88조), 법원은 병역거부자들에게 보통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있다. 이유가 어떠하든 수많은 대한의 청년들이 젊은 날을 감옥에서 보내야만 하는 현실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근본적 대책의 마련을 게을리하는 것은 정부의 역할을 방기(放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부의 태도는 ‘공권력의 불행사(부작위)로 인한 기본권의 침해’에 해당해 ‘위헌’이라고 본다.

2011년 8월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병역법 위헌법률심판사건에서 재판관 7(합헌)대 2(한정위헌)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었는데, 당시 결정 이후 올해 3월까지 동일한 취지로 다시 헌재의 결정을 구하는 유사 심판사건이 총 7건에 달한다고 한다. 헌법재판소의 조속하고도 전향적인 판단을 기대한다.

2012년 프랑스는 “양심적 병역거부로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는 한국 청년 이예다(24)씨의 사연을 듣고 난민 지위를 인정해 망명을 허용한 바 있었는데, 앞으로 더 많은 해외 망명이 줄을 잇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우리나라가 ‘인권후진국’이라는 오명을 벗으려면 양심의 자유에 관한 보편적 기준(글로벌 스탠더드)을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정부는 시급히 대체복무제 마련에 착수해야 할 것이다. 그

리고 “악의적 병역기피를 조장하게 된다”는 반대론자들의 우려를 해소시키고, 병역이 대체복무보다 손해라는 인식이 생기지 않도록 대체복무제를 정교하게 잘 설계해야 할 것이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