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초일류기업인 모 대기업에 특강을 하러 갔었습니다. 업무리더라 불리는 중간관리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내 커뮤니케이션’뿐만 아니라 ‘직장 내 언어폭력’에 대한 이야기도 강의에 포함해 주기를 바라더군요.

 최근에 몇몇 다른 대기업에서 물의를 빚은 사건들 영향 때문인 것으로 생각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특강 주제를 ‘언어의 빛과 그림자’로 정했습니다. 부제는 ‘조직을 병들게 하는 언어폭력과 조직을 튼튼하게 하는 소통의 비결’이었습니다.

말에는 말 그대로 빛과 그림자가 있습니다. 실험으로 입증된 것도 많이 있습니다. 흰 쌀밥을 두 군데 담아서 하나에는 ‘짜증나’, ‘미워’ 등의 부정적인 말을 지속적으로 해 주고 다른 한 쪽에는 ‘예쁘다’, ‘사랑해’ 같은 긍정적인 말을 많이 해 줬더니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 각각 겉모양과 색깔이 상반된 곰팡이가 슬었다는 결과의 실험이 있었습니다.

또 서울의 어느 초등학교 학생들이 양파를 키우면서 같은 방식으로 실험을 했는데 긍정적인 말을 해 준 양파는 건강하게 잘 자란 반면에 부정적인 말을 해 준 쪽은 시들시들한 모습이었습니다. 육안으로 보기에도 확연히 드러나는 명백한 결과를 보여 주는 사진도 어렵지 않게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렇게 부정적인 말을 지속적으로 들으면 무생물이나 식물도 반응을 하게 됩니다. 사람들에게 이런 나쁜 말을 계속적으로 사용한다면 어떨까요? 당연히 그 결과가 예측 가능하실 것입니다.

사실 언어폭력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람들의 인식이 높아지면서 과거에 비해서는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는 언어폭력으로 신음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직장인들 가운데 60~70%가량은 언어폭력을 당해 봤다는 통계가 있으니까요.

이번 특강에서 얼마 전에 직장인들 사이에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을 보여 주고 언어폭력의 유형을 찾아보라고 했습니다. 잘 찾아내시더군요. 보여 드렸던 2분 안팎의 드라마 장면 가운데에서도 무려 예닐곱 번이나 언어폭력이 있었습니다.

여기 비정규직 회사원 김모 씨의 사례가 있습니다. “머리 뒀다 뭐할 거냐.”, “그 나이 먹도록 뭐 했냐.”, “네가 맞먹을 사람 아니니 똑바로 행동해라. 너희 부모님만 욕먹는다.”, “계약 연장을 안 해주겠다.” 등등의 이야기를 직장에서 약 1년 동안이나 지속적으로 들었습니다.

김 씨는 엄청난 스트레스로 결국에는 회사를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사람인에서 직장인 1천8명을 대상으로 올해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 3명 중 1명은 김 씨처럼 직장 내 폭언 때문에 회사를 그만뒀다고 답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2013년 직장 내 폭언이 인권침해에 해당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고용노동부에서도 언어폭력 역시 근로기준법상 폭행 금지라는 범주 안에 들어간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현실에서는 직장 내 폭언이 개인이 감내해야 할 문제로 치부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언어폭력의 특성상 신체 폭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증거 확보와 인지가 어려운 경우가 많아 구제받기가 어렵다는 또 다른 문제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언어폭력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는 많은 직장인들은 고용관계에서 불이익을 당할까봐 등의 이유로 그냥 참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피해자들의 60%가 보복해야겠다는 생각을 품었고, 그 중 13%는 실제로 보복을 감행했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복했을까요? 육체적 보복이 아닌 이상 자신이 당한 그대로 또 다른 언어폭력으로 되갚지 않았을까요?

실제로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과중한 업무, 치열한 경쟁, 성과주의 등으로 직장인들에게 생긴 스트레스가 돌발적이고 폭력적인 언어 형태로 나오고, 그 피해를 입은 사람이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사람에게 전이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가능한 언어폭력과 그 폐해 그리고 예방법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피차 피해가 없도록 더 노력해야 합니다.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은 언어생활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오늘의 과제입니다. 언어폭력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고 혹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들에게 말로 상처를 주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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