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 화교촌이 형성될 때 서울에도 많은 청국인들이 무리를 지어 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화교촌의 진정한 매력은 인천에 있었지요. 경인철도가 개통되고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승객이 별로 없자 철도회사는 서울 거리 도처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광고문을 덕지덕지 붙였습니다.

-(전략)유리창에 기대앉아 요지경 같은 철로변의 풍광을 스치고 나면 인천에 도착한다. 청관양관(淸館洋館)의 흰 벽과 붉은 기둥이 산처럼 옹기종기 솟고, 중화루 공화춘(共和春) 주람에 앉아 백주 청요리에 거나하여 당일로 돌아와도 해가 남으니 어찌 비장방(費長房)의 꿈이 아니리오.

비장방은 천리만리를 날아다닌다는 선인(仙人)입니다. 그러니 알코올도수 높은 배갈과 맛있는 청요리를 맛보며 신선 같은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곳이 바로 북성동 화교촌, 오늘의 차이나타운이고 서울의 풍류객들이여 즐겨 보라는 것이 광고문의 내용인 것입니다.

지금 그곳은 새로운 명소가 돼 주말이 되면 중국요리를 맛보고 중국문화를 즐기려는 유람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불사조 같은 중국 상혼이 살아났다는 설명도 있고, 관계 기관의 노력을 높이 사기도 하며, 한국 상인들의 치열한 상술 역시 평가받기도 합니다.

그것이 전부일까요? 산동과 인천은 원래 가까웠고, 한국에서의 화교들 성쇠가 한중 관계의 농도에 정비례해 왔기에 오늘의 이런 변모에는 여러 요소가 작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랜 옛날부터 “산동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지요. 천주교 신자들이 선교사를 보내 달라고 북경에 서찰을 보낸 200여 년 전에 ‘육로는 멀고 바닷길은 닭 우는 소리가 들릴 듯 가까우니…’하는 구절이 있는 걸 보면 상당히 오래전부터 산동의 닭 울음소리가 두 지역이 가깝다는 의미로 통용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여러 동물 중에서 닭을 이야기했을까요. 닭에 대해 중국인들은 상서롭게 여기면서도 울음소리에 대해서는 미신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믿었지요.

그러나 수탉의 경우는 양(陽)기를 지닌 짐승으로 양기는 우주의 온기와 생명을 표상한다고 해서 다섯 가지 미덕을 부여했습니다.

수탉의 머리 위에 솟아있는 볏은 학문적인 정신의 표식인 관(冠)으로 여겼습니다. 다리에 붙은 며느리발톱은 호전적인 성향의 징표로 적과의 싸움에서 용맹함을 뜻했습니다.

그리고 인정이 많아 곡식을 모아 쪼아 먹을 때는 암탉을 불렀다고 했습니다. 더하여 신용이 있어 결코 시간을 잊지 않는다 했지요. 그들은 벽에 붉은 닭 모습을 붙여 놓는데 이는 집을 불로부터 보호해 준다는 의미였습니다.

 또한 유령들이 해가 뜨면 사라지기 때문에 수탉의 울음소리가 귀신을 쫒는다고 여겼습니다. 장례식 행진 때 관(棺) 위에 흰 수탉을 놓는 것이 바로 잡귀들을 말끔히 물리친다는 것과 수탉은 성스럽고 신령하다고까지 여기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듯 수탉은 어김없이 새벽이 오는 것을 알리는 공계보효에서 어둠을 보내고 햇살을 맞이하니 신용도 있고, 수탉 즉 공계의 공(公)은 ‘功’을, 닭이 운다는 명(鳴)은 ‘名’과 발음이 일치한다는데서 공명(功名)을 이룬다는 풀이도 했습니다.

요즘도 외신 보도에서 간혹 ‘지구상에 화교들이 판치지 않는 곳이 없는데 유독 한국에서만은 맥을 추지 못한다’는 내용을 보도합니다.

마치 우리 민족성이 폐쇄적이라 그렇다는 뉘앙스를 짙게 풍기면서 말입니다. 태국 사람들의 ⅔에 화교의 피가 흐르고 배타적인 동남아 각국에도 화교들의 전통문화가 대접받는다는 기사도 비슷한 의도겠지요.

그들에게 지금의 차이나타운을 와서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중국과의 뱃길도 활짝 열려 있고 빈번하게 오가는 사람의 발길이 분주하다는 걸 알게 되겠지요. 풍성하지는 않아도 중국문화를 꽤 깊이 맛볼 수 있다는 점도 꼭 보여 주고 싶군요.

아무튼 인천 중구의 차이나타운은 한껏 기지개를 펴고 있고 한중 관계 역시 그 어느 때보다 평온한 황해를 사이에 두고 선린하고 있습니다.

 바다가 죽었다 하리만큼 잠잠한 지중해 국가들의 경우 자신있게 헤치고 나아갔기에 진취적 수평사고(水平思考)가 발달했고, 풍랑이 거센 바다를 가진 나라는 움츠러들어 보수적 수직사고(垂直思考)가 되기 쉽다고 하지요.

 이제 우리도 닭 울음소리 들릴 듯 가까운 양안의 잔잔한 황해를 향해 자신있게 나아가는 진취적인 수평적 사고로 이 변화를 받아들였으면 합니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으로 운영되는 지역민참여보도사업의 일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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