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이야기지만, 국가가 불법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헌법 제12조 제7항이 “피고인의 자백이 고문·폭행·협박·구속의 장기화 또는 기망(欺罔) 기타의 방법에 의하여 자의로 진술된 것이 아니라고 인정될 때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고 규정한 것도 범법자 처벌을 이유로 국가가 고문 등 불법행위를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형사소송법 제308조의 2는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할 수 없다”고 해 ‘위법수집증거의 배제원칙’을 규정하고 있는데 그 이유도 같다. 물론 이들 규정의 주된 취지는 인권 보호에 있다.

지난 5월 6일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함정수사’로 적발한 범죄에 대해서는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함정수사란 수사기관 또는 그 의뢰를 받은 자가 범죄를 교사(敎唆)하거나 또는 방조(幇助)한 후에 용의자가 범죄의 실행에 착수하는 것을 잡는 것을 말한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함정수사를 통해 범행을 발각하고 이를 공소한 것은 위법하기 때문에 무효”라고 밝혔는데, 이는 “범법자 처벌이라는 명목 하에 국가가 범법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타당한 판단이라고 본다.

그런데 지난 3월 26일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에서 “유신헌법에 따른 대통령 긴급조치 제1·2·9호가 위헌”이라는 2013년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사실상 뒤집는 판결을 내려 논란이 되고 있다.

재판부는 “당시에는 긴급조치 제9호에 의하여 영장 없이 피의자를 체포·구금하여 수사를 진행하고 공소를 제기한 수사기관의 직무행위나, 긴급조치 제9호를 적용하여 유죄판결을 선고한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는, 유신헌법이 긴급조치는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었고 긴급조치 제9호가 위헌·무효임이 선언되지 않았던 이상,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대통령의 긴급조치 발령은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로서 대통령의 이러한 권력 행사가 국민 개개인에 대한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그런데 이러한 판결은 “국가는 불법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관점에서 볼 때 매우 수긍하기 어렵다고 본다. 몇 가지 문제점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당시로서는 긴급조치가 위헌·무효임이 선언되지 않았기 때문에’ 긴급조치에 따른 국민들의 피해사례에 대해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한 것은 지나치게 형식논리적인 판단이다.

 국가는 국민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보장하는 무한책임을 지는 주체로서 국가권력의 이름으로 행해진 모든 불법행위에 대해 포괄적이면서도 개별적인 법적 책임의 주체가 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만일 위의 판결의 논리를 타당한 것으로 인정한다면 일제강점기에 빚어진 각종 피해사례에 있어서도 ‘당시로서는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해 불법이 선언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이란 국가에 대해 불법행위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얘기인가?

둘째, 위헌인 긴급조치의 발령을 불법행위로 보기 어렵다는 것은 불합리한 판단이다. 왜냐하면 ‘위헌’이란 국가의 최고기본법인 헌법을 위반한 것으로서 ‘최악의 불법’에 해당하는 것인데, 위헌인 긴급조치의 발령이 ‘불법행위’가 아니라고 보는 것은 실질적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권력의 수뇌부에 의해 행해진 위헌적 조치는 일반 공무원에 의해 행해진 불법행위보다 위법성이 더 크므로 국가배상 책임을 넓게 인정하는 것이 형평과 정의의 관념에 부합할 것이다.

셋째, 일반 공무원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국가배상 책임을 묻는 것이 가능하다고 하면서도 권력의 수뇌부에 의해 행해진 위헌적 조치에 대해서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라고 미화해 국가배상 책임을 묻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시대착오적인 판단이다.

21세기 대명천지에 민주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왕은 악을 행할 수 없다(King can do no wrong)”라는 절대왕정시대의 ‘국왕면책론’의 논리를 우리나라 최고 법원인 대법원이 추종하고 있는 것 같아 매우 실망스럽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