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봉한 영화다. 연산군을 모티브로 희대의 색(色)을 통해 광기 어린 시대를 담았다.

영화를 보기 전 이 영화가 ‘야하다’ 그리고 ‘잔인하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이 소문에 다소 실망했다.

노출신 등은 이 영화가 잡고 있는 문제의식을 적절히 보여 줬고(그렇다고 영화 자체가 잘 만들어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야하다기보다는 오히려 코믹적으로 다가왔다.

 단, 후반부에 두 여인이 색에 대해 자웅을 겨루는 장면은 야했다. 또 사람을 죽이는 잔인한 장면은 영화 ‘킬빌’만 못했기 때문에 그다지 충격적이지도 않았다.

소문과 다소 달랐던 부분 외에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이유는 따로 있다. 영화의 완성도를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영화가 지니고 있는 문제의식, 의도됐던 아니었건간에 지금의 시대와 닮았기 때문이다. 굳이 스토리를 풀어 놓지 않더라도, 이 영화는 대사만으로도 문제의식이 왜 지금의 시대와 닮았는지 알게 해 준다.

우선 영화의 스토리를 전개해 나가는 대사인 “단 하루에 천년의 쾌락을 누리실 수 있도록 준비하겠나이다”는 그야말로 영화 제목과 딱 부합한다. 하루에 누릴 수 있는 천년의 쾌락, 천년의 쾌락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상상도 하지 못할 그 상황을 제공하겠다는 어법은 이 시대 정치(인)와(과) 꼭 닮았다.

“왕을 다스릴 힘이 내 손 안에 있습니다. 내가 바로 왕 위의 왕이란 말입니다”라는 대사는 이 대사를 소개하는 것으로 갈무리하겠다. 무엇과 닮았는지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알 수 있을 테니까(모르더라도 그건 자유다). 개인적으로 가슴을 울렸던 대사는 바로 다음 대사이다. “어느 누가 미치지 않고서 이 난세를 살 수 있겠습니까.”

사실 어렸을 적부터 하던 고민이다. 굳이 ‘난세’가 아니더라도 순간순간 세상이 미친 것인지, 내가 미친 것인지 모를 정도로 상식적이지 않은 순간에 직면할 때가 종종 있었고, 앞으로도 있으리라 예상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겪고 있지 않은가. 미친 것을 떠나 지금은 난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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