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동안 많이도 먹었다. 다이어트가 강박으로 자리 잡아 초과 식사량에는 마음이 불편해 소화불량이 오곤 했었다. 다이어트는 밀쳐놓고 입맛 당기는 대로 먹자 했더니 세상에 맛있는 음식이 천지다.

손맛 좋은 친정어머니 덕분에 입이 호강을 해서 먹는 즐거움을 누리며 살았다. 나이가 들어 중년이 되면서 순환장애도 생기고 소화력도 약해지고, 피곤하면 입안이 까실해 맛이 없어지곤 한다.

 여럿이 먹어야 덩달아 맛있어지는데 가족이 줄면서 만드는 음식량도 줄이다 보니 푸짐하지 않아서 제맛이 안 난다. 식욕이 없어지면 체중이 줄어야 정상인데 오히려 나잇살이 붙어 두루뭉술해진다. 우울증이 오기 딱 좋다.

우울증이라고는 했지만 병증까지는 아니고 가끔 기분이 다운되거나 몹시 지칠 때가 있다. 체력 소모를 과하게 하지 않았는데도 기운이 쭉 빠지면 만사가 귀찮다. 그럴 때 가장 타격을 받는 것이 세 끼 식사다. 제때 챙겨 먹지 않는 일이 잦으니 위도 적응을 해서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5월부터 6월 초순인 지금까지 맛집 순례를 다녔다. 지역 특산물인 제철 먹거리로 만든 음식을 맛보며 달아난 입맛을 되찾았다. 원래 가리지 않고 잘 먹어 식성이 좋았는데 입맛도 퇴화를 했는지 먹는 일에 흥미가 없어지고 그러다보니 요리하는 것도 시큰둥해졌다.

유명 요리 선생님이 손맛은 입맛을 기억하는 것이라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어 본 사람이 음식도 잘 만든다고 한 말이 생각난다. 화려하거나 특별식이 아니어도 대식구 성찬을 맛깔스럽게 차려내신 어머니 덕분에 먹어 본 음식 맛의 기억을 살려 만들면 음식 솜씨가 괜찮다고 칭찬을 받곤 했었다.

담근 게장이 맛이 들어서 지인 몇 사람을 불러 점심을 먹었다. 열두어 마리 암꽃게로 만든 게장은 양이 많지 않아서 싸주지는 못해도 밥도둑이란 말을 증명하듯이 바닥을 보였다. 덕분에 불룩 나온 배만큼이나 행복포만감이 가득해져 유쾌하고 맛있는 점심이 됐다.

우리 나이대가 되면 오나가나 다이어트 이야기다. 실패 경험이 더 많은 그놈의 다이어트는 치워 버리고 맛있게 먹고 즐겁게 사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지름길이라고 둘러앉아 한마다씩 폭식 예찬론을 펼친다.

폭식이라고 해서 날마다 매끼마다 폭식을 하지는 않는다. 가끔 기분이 울적하거나 스트레스로 심신이 지치거나 그냥 이유 대지 말고 맛있게 먹고 싶은 욕구가 생길 때, 좀 많이 먹으면 어때서. 지탄받을 일도 자책할 일도 아니다. 부른 배로 느긋해지고 나른한 행복감에 취해 보는 것도 잘 사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아주 마른 아줌마보다는 살집이 있는 아줌마가 호감이 간다. 세상일에 호탕할 것 같고, 푸근해서 인정이 있을 것 같고, 오지랖 넓어 참견도 잘 할 것 같고, 밥심으로 일도 잘 할 것 같고, 당연히 식사량도 많아 잘 먹는 모습에 같이 밥 먹는 사람들 입맛도 돋워 줄 것 같고. 열에 아홉은 긍정 에너지를 가졌다.

건강 생각해서 덜 먹어란 말은 그만하자. 가끔 폭식도 즐겁다. 병으로 생긴 폭식이야 치료를 받아야 하겠지만 잘 먹고 부른 배 쓰다듬으며 기분 좋아진 폭식은 엔돌핀 제조기다. 내가 기분이 좋으면 주위 사람들에게 다정하고 관대해진다.

 배불러 기분 나빠지는 경우는 잘 없을 테니 맛있어서 많이 먹는 즐거움도 가끔은 즐겨 보자. 젊은이는 대사율이 좋으니 가끔 폭식을 해도 크게 몸에 무리가 가지 않을 테고. 스트레스 심한 학생들도 인스턴트 간식으로 허기를 달래지 말고 제대로 된 식사로 맘껏 먹는 날이 필요하다. 세상에는 좋아서 선택하는 다양한 기호가 많이 있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는 행복감을 제칠 것들은 그리 많지 않다.

6월의 제철 음식이 땅두릅, 참나물, 감자, 오이, 아욱, 꽈리고추, 주꾸미, 우럭, 조기, 농어, 전복, 꽃게, 장어, 다슬기, 멍게, 참외, 토마토, 매실 등등 많기도 하다. 값싸고 영양 만점인 제철 음식으로 가끔 폭식의 즐거움을 누려 보는 것도 세상 사는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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