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2주일에 한 번은 점심을 굶는다. 아니, 굶을 수밖에 없다. 격주로 다가오는 칼럼 ‘서해안’을 쓰는 날이어서다. 지금까지 미리 칼럼을 쓴 기억이 거의 없다. 늘 당일치기로 해치우는 탓에 ‘마음에 점을 찍을’ 여유를 부리기 힘들다.

담배를 40개비 이상 태워 없애고도 단 한 음절도 쓰지 못할 때가 태반이다. 주제라도 정했다면 한결 마음이 가벼울 테지만 이도 저도 아닐 때는 정말 ‘미쳐 버릴’ 지경이다. 괴지 않는 생각을 억지로 쥐어짜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겠지만 2주 만에 텅 빈 생각을 괴게 하는 것은 적어도 기자에겐 무리다.

해서 오늘은 부러 점심을 먹는 호기를 부렸다. 머리를 싸맨다고 소득이 없는 일이라면 입이라도 즐겁게 하겠다는 발상에서다. 한데 ‘작전’이 성공했다. 15년지기와 동석한 처음 뵙는 분이 식사 도중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그분은 ‘무감어수 감어인’(無鑒於水 鑒於人)이라는 말을 늘 가슴에 새기고 산다고 했다.

물에다 얼굴을 비추지 말고 사람에게 자신을 비춰 보라는 뜻이다. 거울이 없던 시절에 사람들이 물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 봤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현재는 물을 거울로 해석해도 무방할 듯싶다.

순간 한 저명한 사회학자가 주창했던 ‘거울자아’라는 이론이 떠올랐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에 대한 자신의 느낌으로 자기정체성이 세워진다는 이론이다. ‘감어인’과 유사한 의미다.

요즘 세태를 보면 외모지상주의가 판을 친다. 달리 말하면 ‘감어수’(鑒於水)하는 경향이 극에 달했다. 성형외과가 문전성시를 이루는 것도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만을 예쁘게 꾸미기 위함이다.

반면 남의 시선과 평판에 지나치게 예민한 탓에 건강한 자아상을 갖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고로, 결론은 ‘감어수’(鑒於水)하는 만큼 ‘감어인’(鑒於人)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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