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 사회는 보이지 않는 불안과 공포에 잠식당해있다. 중동호흡기증후군으로 불리는 메르스는 하루가 다르게 확진 환자와 의심 환자들을 쏟아내고 있고 치사율도 10%를 웃도는 실정이다. 메르스가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까닭은 ‘모른다’는 데 있다. 신종 바이러스기 때문에 백신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렇게 불안한 가운데 감염경로에 대한 부실한 대응과 정부의 방침은 질병에 대한 공포를 확산시키고 있다. 이렇듯 공포를 낳는 데는 미지(未知)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있다.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우리는 대책을 강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포영화의 탄생도 미지의 두려움과 그 맥을 같이 한다. 1920년대 등장한 호러영화는 독일 표현주의 사조와 관계 깊다. 1차 세계대전과 그 패배는 독일사회에 혼란을 가져온다.

 전쟁은 지난 세기의 몰락과 기존 가치관의 붕괴 그리고 정치적 불안과 경제적 궁핍을 야기했다. 사회에 만연한 불안은 독일인의 의식에서만이 아니라 문화·예술적으로도 표출되기에 이른다. 당시 등장한 독일 표현주의란, 인간의 불안한 내면과 그 심리를 주관적인 관점에서 부각한 예술사조다. 이를 영화로 시각화한 것이 독일 표현주의 영화다.

오늘은 표현주의 작품이자 공포영화의 효시로 평가받는 작품인 1919년 작품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을 소개한다.

영화의 서사는 칼리가리 박사에 대한 프란시스의 회상으로 시작된다. 독일의 한적한 시골 마을에 칼리가리 박사와 그의 조수 세자르가 나타나면서 그 평화는 종식된다. 마을 공무원과 프란시스의 친구 알렌은 뚜렷한 원인도 없이 끔찍하게 살해돼 발견된다.

그뿐만 아니라 그가 연모하던 여인마저 괴한에게 납치당하는 등 흉흉한 사건이 연이어 발생한다. 프란시스는 보이지 않는 공포와 연쇄살인의 중심에 칼리가리 박사와 세자르의 광기가 도사리고 있다고 굳게 믿게 된다

. 그러나 프란시스가 사건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놀라운 반전이 펼쳐진다. 모든 이야기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프란시스의 망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칼리가리 박사는 존경받는 정신과 의사임이 밝혀지는 마지막 장면은 100여 년이 지난 오늘에 봐도 여전히 혼란스러움과 충격을 선사한다.

꿈과 현실의 전복, 강박관념과 불안으로 가득 찬 세계를 보여주는 영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은 심리적 공포영화에 가깝다. 괴물의 등장이나 끔찍한 장면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대신, 그로테스크한 미장센으로 관객의 심장을 서서히 조여온다.

 기울어진 벽, 급격한 내리막길, 뾰족 솟아있는 불규칙한 건물은 주인공의 불안한 심리를 시각적으로 강화한다.

이뿐만 아니라 공포의 실체를 명확히 보여주기보다는 그림자의 크기와 움직임을 통해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공포를 세련되게 형상화한다. 이처럼 양식화된 미장센으로 채워진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은 공포와 과대망상으로 가득한 당시 불안했던 독일사회를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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