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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문 변호사
 최근 여야를 불문하고 한심스러운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여당은 대통령이 원내대표를 국민에게 심판해달라고 국무회의에서 호소하는 광경이 벌어졌고, 이를 둘러싸고 친박과 비박 사이에 논쟁이 가열되다가 유승민 원내대표가 의총 후 자진 사퇴하게 됐다.

 야당은 여전히 친노와 비노라는 그룹들이 서로를 믿지 못하고 상대방을 공격하고 있다. 최근엔 다시 야당에서 신당논쟁이 벌어지고 있고, 박준영 전 지사가 자신이 속한 야당을 탈당했다.

 최근 정치권의 움직임을 보면서 ‘과연 정치인들에게 지조란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느꼈다. 그들에게 지조란 무엇일까라는 것은 부제에 불과하다. 일찍이 조지훈은 지조론에 대해 설파한 바 있다. 지조(志操)란 것은 "순일(純一)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이요, 눈물겨운 정성이며, 냉철한 확집(確執)이요, 고귀한 투쟁"이라고 했다. 이 사회의 지도자들을 평가하는 기준으로서 제시한 기준이다. 불타는 신념, 눈물겨운 정성, 냉철한 확집, 고귀한 투쟁 등이 지조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지조를 헌신짝 버리듯이 버리고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세상에 대한 회의감이 든다. 자기의 명리(名利)를 위해 배신하는 자들도 있고, 자신의 명리 이외에 지역의 발전이나, 또는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배신하는 자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정치적 가치, 아니 헌법적 가치를 위해 자신의 주군과 다른 길을 가려는 사람들도 있다. 유승민의 헌법적 가치는 곧 청와대의 비판으로 연결되기는 했지만, 국민적으로는 지지를 받았다.

 박준영 등의 탈당으로 야당은 새로운 분열을 앞두고 있다. 과연 그들이 역사의 순리를 따르는 행동일까 싶다. 그들에게 불타는 신념이나 눈물겨운 정성이 있는 것일까? 냉철한 확집이나 고귀한 투쟁 정신을 과연 있는 것일까? 왜 그들은 같은 당내에서 그와 같은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지 못하는 것일까?

 지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일으켰던 동교동계의 핵분열도 마찬가지이다. 한화갑, 한광옥, 이윤수, 김경재 그들은 김대중 정신을 새누리당에 보급하기 위해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다고 했으며, 지역발전 논리를 내세웠다.

 호남인들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호남인들이 사는 지역을 위해 박근혜 지지를 하겠다고 나섰었다. 그들은 호남이 민주당의 식민지인가라는 항변도 했다. 호남이 민주당의 식민지가 아니기에 얼마든지 지지 정당을 바꿀 수 있다는 논리다. 맞는 이야기이다. 물론 바꿀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새누리당에 김대중 정신이 이식되었는가? 호남지역의 발전은 이루어졌는가? 호남은 그들을 지금도 지지하고 있는가?

 문제는 그러한 정치인들을 바라보는 국민의 생각이다. 자기의 사상과 신념, 양심과 생각을 자연의 순리대로 흘러가게 한다면, 그것은 변절일까 아닐까? 일본강점기에는 일제에 호응하고, 미군정시대에는 미군에 호응하고, 좌우익이 싸우던 시절에는 선택적으로 호응하고, 자유당 시절에는 자유당에 호응하고, 공화당 시절에는 공화당에 호응하는 형태로 살아간다면 말이다.

 언제나 권력과 맞서서 싸울 것이 아니라, 권력의 편에서 일하는 것이 자연의 순리인 것일까? 어쩌면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일는지도 모른다. 권력의 편과 맞서서 싸울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이는 마치 여름엔 아이스크림 장사를 하다가, 가을엔 단팥죽 장사로 변신하고, 겨울엔 고구마 장사로 다시 변신하고, 봄엔 비닐 장사로 변신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하는 지적처럼 말이다.

 진정 이 시대의 정신을 지켜내는 지조 있는 정치인들을 우리는 보지 못하는 것일까? ‘사람을 보려면 그 후반을 보라.’ 했다. 사람이 늙으면 추해진다. 추해지기 쉬운 나이에 청년의 시절에 가졌던 기상, 신념, 양심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후반의 인생으로서 남들이 보기에 아름답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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