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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2013년 국회를 통과한 정년연장 관련 법규정(60세 정년 보장)이 종업원 300명 이상 기업에 대해서는 2016년, 300명 미만 기업에 대해서는 2017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그런데, 최근 정년연장이 초래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의 10%대 청년 실업률이 2020년까지 16%로 증가하고, 기업의 추가 부담액은 약 107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또한 한국경영자총협회는 2017년부터 5년 동안 기업의 임금비용이 총 115조902억원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따라서 이러한 우려의 현실화를 막기 위해 정년 연장과 함께 임금피크제를 연계하여 시행해야 한다는 논의가 확산되고 있다. 정부는 임금피크제가 청년고용의 절벽 해소뿐만 아니라 장년층의 고용안정에도 효과가 있는 방안이라고 보고 이의 채택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그런데,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일반적인 방법은 취업규칙을 통한 방식이다. 단체협약을 통해서도 가능하지만 비조합원에게도 적용되게 하려면 단체협약과 취업규칙을 함께 변경하는 방식이 선호될 것이다. 임금피크제의 도입시 가장 큰 쟁점은 취업규칙 변경의 문제이다.

 특히 임금을 줄이는 내용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하는 것은 ‘불이익변경의 문제’가 될 수 있어 변경절차의 합법성 충족이 중요하다. 근로기준법은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시’ 근로자 과반수(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조가 있는 경우 그 노조)의 동의를 얻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대법원 판례는 근로자 동의를 얻지 못한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일지라도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되면 유효하다고 본다. 고용노동부는 이러한 판례 법리에 기초해 현장의 분쟁 예방을 위한 ‘사회통념상 합리성에 관한 기준’을 ‘취업규칙 변경에 대한 지침’으로 마련하려 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근로자들의 이해는 크게 영향을 받게 된다. 왜냐하면, 취업규칙의 변경은 노조가 미조직되어 있거나 조직되어 있더라도 조직율이 낮은 사업장에서는 근로조건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근로자들에게 ‘과반수 동의’요건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생각건대, 정부가 정년연장을 임금피크제와 연계하여 시행하도록 권장하면서 이를 지침을 통해 일선 현장을 지도하고자 하는 취지는 충분히 수긍할만하다. 왜냐하면, 임금비용 급증에 따른 기업의 부담을 완화해 주고 정년연장제의 원활한 도입·안착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의도는 매우 예외적으로 인정되어야 할 ‘사회통념상 합리성 기준’을 일반화하는 등의 법적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또한 미국·영국·독일·프랑스 등 많은 선진국에서는 정년제 자체가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 임금피크제는 ‘연령을 이유로 한 차별’이란 법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또한 사업장마다 처한 여건이 다를 터인데 획일적인 지침으로 임금피크제의 운용을 사실상 강제하게 되면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초래할 우려도 있다. 과거 통상임금 관련 분쟁을 예방하기 위해 정부가 마련했던 ‘통상임금 산정지침’이 판례와의 불일치 등으로 인해 오히려 원활한 법적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부작용을 초래했던 점을 고려한다면 ‘취업규칙 변경에 대한 지침’의 마련도 자칫 또 다른 법적 분쟁의 실마리가 될 우려가 크다.

 결국 임금피크제의 시행에 관한 문제는 다소 시간이 걸리고 갈등이 수반되더라도 노사가 자율적으로 해결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본다.

임금 등 근로조건에 관한 문제는 노사 당사자 간에 합리적이며 진지한 ‘협상’과 ‘흥정’으로 결정되는 것이 최선이며, 정부의 성급한 개입이 더 큰 문제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사간 대화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노(勞)’가 없으면 ‘사(使)’가 있을 수 없고, ‘사(使)’가 없으면 ‘노(勞)’도 있을 수 없다"는 인식하에 서로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으며, 자기주장만 관철하려 하지 말고 때로는 타협과 절충의 미덕이 발휘되기를 바란다. 정부는 노사 간에 진지한 대화가 진행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행·재정적으로 지원하는 등 균형적인 촉진자(facilitator)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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