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기범 아나운서
얼마 전에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H케미칼에 강의를 하러 갔었습니다. 임원들을 위한 특강이었는데, 특별히 일과 가족을 동등하게 여기는 ‘가족친화 경영 마인드’에 대한 이야기를 ‘소통’을 중심으로 풀어내달라는 해당 기업의 주문이 있었습니다.

 인생이란 마치 저글링을 하는 것처럼 일, 가족, 건강, 친구 등등 여러 가지의 공을 쉴 새 없이 공중으로 던졌다가 잘 받아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고무공과 유리공이 섞여 있습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떨어뜨릴 경우 고무공은 다시 튀어 오르겠지만 반대로 유리공은 깨져버려서 다시는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게 됩니다.

 가족은 유리공입니다. 정말 조심해서 다루어야합니다. 절대 놓쳐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일’의 중요성 역시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소통을 중심으로 한 ‘가족친화 경영’을 추구하는 그 기업의 새로운 시도가 매우 신선해보였습니다.

 직장과 가정에서 어떻게 소통해야하는가에 대한 2시간 강의 내내 경청하며 메모하는 임원들의 모습을 보며 ‘이 회사의 미래는 매우 밝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회사를 경영하는 임원진부터 부하직원들을 가족처럼 여기고 소통하려는 노력을 한다면 어떤 난관도 극복해나갈 수 있을 터입니다.

 특별히 자녀와의 소통에도 큰 관심을 보였는데 자신들은 젊은 시절 일에만 매달리느라 가족들 특히 자녀들에게 소홀할 수밖에 없었음을 안타까워하며 지금이라도 제대로 소통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나마 자녀들과의 대화는 그동안 주로 교육에 관련되었던 것이었다고 고백 아닌 고백을 했습니다.

 어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조선시대의 교육열을 다룬 적이 있습니다. 매우 흥미 있게 보았습니다. 자녀들을 잘 가르치기 위한 부모들의 열성은 그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육에 대한 뜨거운 열기는 궁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아직 왕세자에 책봉되지 않은 임금의 맏아들을 원자(元子)라고 합니다. 원자가 태어나면 보양청을 설치하고 원자 양육에 대한 기록인 ‘보양청 일기’를 남긴 것은 물론이고 원자가 4-5세가 되면 강학청을 설치해 교육했다고 합니다. 이후 원자가 세자로 책봉이 되면 보다 더 체계적인 교육이 시행되었습니다.

 세종대왕은 경복궁의 동쪽에 세자시강원을 최초로 설치하고 당대 최고의 스승들을 동원해 장차 왕이 될 세자의 교육을 맡겼습니다.

 이러한 왕실 교육은 양반 사회 전반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교육이 과거시험으로 연결되고 거기에 합격하면 가문의 영광을 보장했기 때문이라고 역사학자들은 말합니다.

 지금의 입시 위주 교육과 많이 닮아있습니다. 눈여겨볼 대목이 있습니다. 영조와 사도세자와의 갈등이 교육 문제에서 시작되었다는 시각입니다.

 마흔 둘의 적지 않은 나이에 원자를 본 영조는 원자가 두 살 때 왕세자로 책봉하고 교육에 온 힘을 쏟았습니다.

 사도세자는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했는데 그래서인지 아니면 영조의 기대가 컸던 탓인지 다른 시대 왕세자들보다 학업 진도가 2년이나 빠르게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조기교육이었습니다. 영조는 사도세자를 위해 직접 친필로 ‘어제상훈’이라는 교과서를 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교육열이 결국은 부자간의 갈등 양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사도세자는 영특하기도 했지만 무인의 기질이 강했다고 합니다. 활동적인 아이에게 방안에서 공부만 하라고 시킨 셈입니다. 거기다가 각종 시험들도 왕세자를 힘들게 했습니다.

 이렇게 아들의 적성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방식대로만 교육을 고집하다보니 아들은 아버지의 바람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했고 거기에 질책이 뒤따르면서 둘 사이는 점점 더 멀어져 결국에는 파국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사서에 의하면 사도세자는 말년에 영조와 직접 대면할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소통의 기회가 없었던 것입니다. 영조는 훗날 사도세자가 죽은 뒤에 "내 사랑이 지나쳤다. 내가 교육에 실패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교육에 힘을 쏟는 것을 탓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교육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자녀가 가고자하는 길과 맞는 것인지를 잘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의 과제입니다. 자녀와의 진정한 소통을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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