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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남북한 관계가 또다시 위기를 넘겼다. 출구를 알 수 없는 길고 어두운 터널에서 빠져나온 것이다. 군에 자식을 보낸 부모들과 가족들이 애써 억누르고 있었던 두려움이 시간이 그렇게 흘러갔다.

 젊은 자식이 전쟁터에 휘말릴 것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만으로도 끔찍하다. 자녀라고 해봐야 한 두 명인 현실에서 전쟁으로 모든 것이 폐허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상상해야 한다는 것 또한 불행한 일이다. 국민들이 밤마다 잠을 설쳤던 이유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았던 최전방 상황을 보면서 생각했다. 왜 우리는 주기적으로 전쟁위기를 반복해야 하는가. 한방에 날리자는 주장부터 이 참에 쓸어버리자는 댓글이 넘쳐났다.

일부 댓글과 일부 종편을 보면 마치 남북한 충돌이 바로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듯하다. 그러나 전쟁을 부추기는 세력에게 엄중히 경고해야 한다. 한반도를 폐허와 증오로 가득한 세상으로 만들어서는 절대 안된다는 것을.

 남북한의 타결을 박근혜 정부의 승리로 표현하는 입장도 있다. 하지만 위기상황을 키운 데에는 정부의 책임도 크다. 정부는 출범이후 남북한 관계나 한일관계에서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김정은도 아베 총리도 시쳇말로 좀 특별한 사람들이다. 정통적인 방식과 상식적인 전략으로는 통하기 어려운 상대들이다.

 그러나 정치도 삶도 다양한 기준과 식견을 가진 사람과 함께 살아가면서 만들어진다. 그래서 소통(疏通)이 강조된다. 그렇다면 오해가 없도록 뜻을 서로 통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학생에게는 학생의 수준으로, 외국인에게는 외국의 기준을 토대로 소통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일방적 설득이나 강요가 아니라 만남에서 시작한다. 만남과 대화를 통해 신뢰가 쌓이고, 상호간 깊은 신뢰가 올바른 결정으로 이끄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주 지적되는 소통부재의 책임이 대통령에게만 있는가.

 단언컨대 그건 아니다. 지난 70주년 광복절, 경축식 초청장을 받았다. 하지만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의 특성을 아는지라 고민을 했다. 참석절차는 복잡하고, 별로 할 일도 없기에 그러나 같은 행사에 참석하는 어른들이 점심이나 하자는 제안에 아침 일찍 전철을 탔다. 한시간전에 도착한 식장의 2층에는 장관, 외교관, 군장성, 민주평통, 특별초대석의 팻말이 보였다.

 이른바 지정석이 없었다. 공교롭게 옆자리가 경호원자리였다. 지정석이라고 새겨진 테이프로 감겨 있었다. 그런데도 그것을 뜯고 무작정 엉덩이를 들이미는 분들에게 이야기 했다.

테이프를 뜯으면 안되고, 이 자리는 경호원석이라고. 그렇게 정말 무료한 시간이 지나고, 행사가 시작될 무렵 TV에서나 뵙던 장관 몇 분이 들어섰다.

 의전담당자로 보이는 공무원이 2층 앞줄에 가서 이야기를 했다. 아마도 이 자리는 장관자리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먼저 와서 자리를 차지한 시민들은 미동도 없었다.

 결국 장관들을 알아본 군 장성들이 자리를 양보하면서 일단락되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생각했다. 장관들도 시민들처럼 한 시간 전에 오면 안되는가. 그리고 시민들과 차 한잔을 하면 안되는가.

 외교부 장관이 각국의 외교관들과 담소하며 70주년 광복절과 평화통일의 의지를 전했다면, 깔끔하게 차려 입은 장성들과 국방장관이 굳건한 안보를 서로 다짐하고 격려하였다면, 통일부 장관이 각지에서 온 민주평통 위원들과 통일정책을 이야기했다면, 정말로 무료했던 경축행사 시작 전의 한 시간은 잊을 수 없는 소통의 시간으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내년에는 초청장이 와도 가지 말아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전철에 몸을 실었다. 그러나 TV에서는 늘 그랬던 것처럼 앞자리의 VIP와 정치인들, 태극기로 흔드는 시민들을 비추었다.

언제 부터인가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조차도 형식이 강조된다. 물론 안전을 위해 경호의 엄격함은 강조되어야 한다. 하지만 소통을 통해 신뢰가 쌓이는 공간과 시간으로 경축행사를 만들 수 는 없는가. 국가적 행사의 의식과 의례에도 차별화와 품격화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남북한 관계나 한일관계 악화가 소통의 부재에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반대로 한중 밀월관계는 성공적인 소통과 신뢰에 기초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위기는 사람들이 만든다. 그러나 그 해결도 사람들이 한다. 만남과 대화가 바로 증오와 위기를 해결해 가는 출발점이다. 남북한 충돌위기를 다시 한번 반복한 우리들이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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