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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효성 소설가/기호일보 독자위원
‘성공한 사람들의 시간 관리’ 등을 다룬 책들을 보면 성공한 사람들은 허투로 시간을 버리지 않는다. 정확한 판단 하에 예측하고 설정한 목표를 향해 자신의 시간을 올인 한다. 성공을 위해서 냉정하게 자신을 채찍질하며 담금질해서 성공을 거머쥔 그들을 세상은 우상으로 떠받든다. 우리 시대의 성공이란 곧 부를 상징하는 것이라 돈을 많이 벌면 당신은 무조건 성공한 사람이 된다. 거꾸로 뒤집어보면 성공하지 못한 서민 대다수 사람들은 게으르고 인내가 부족하여 시간을 가치 없이 낭비한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울컥하는 생각에 할 말이 많아진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효용의 가치를 우선하여 사용하는 사람은 지금 바로, 아니면 멀지 않은 장래에 분명 실익을 얻는다. 부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한 우리사회에서 실익을 얻는 일이 아닌 것에 시간을 쏟는 사람은 비난과 조롱의 대상으로 손가락질 받기 십상이다.

 예전에 재야의 인문학 스승으로 은거하고 계시던 선생님 말씀이 생각난다. 우리가 획일적 문화를 가지게 된 배경에는 농경사회인 우리나라의 지형적 위치를 이해해야 한다고 하셨다. 벼농사 북방한계선에 위치한 우리나라는 볍씨를 뿌리고 모내기를 하고 한 벌 두 벌 논을 매고 타작을 하기까지 시기마다 짧은 시간만 주어지는 적기를 놓치면 한 해 농사를 망치게 되어있다. 쌀 미(米)에 여덟 팔자가 두 개나 들어있는 것은 볍씨를 고르고 뿌려 수확해서 탈곡하기까지 사람 손이 88번을 거친다는 뜻이니 한 눈 팔지 말고 농사에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한다.

 아열대 작물인 벼를 벼농사 북방한계선인 우리나라 기후에서 재배하려면 수월한 일이 아니다. 일 년 꼬박 공을 들여야 하는 농사라 일시에 뚝딱 해 치우는 힘보다는 일 년을 준비하고 키워야 소출이 나오는 일이다 보니 부지런하고 성실한 일꾼을 최고로 친다는 것이다. 철철 마다 시기마다 딴 짓 하지 않고 한꺼번에 몰아치기 하지 않는 성실이 덕목인 된 것이다.

 지주 집에서는 장군감으로 힘쓰는 대장부보다는 다리알통 단단하고 성실해서 잔꾀부리지 않고 열두 달 부지런한 사내를 일등머슴으로 쳤다고 한다. 그래서 호랑이 때려잡는 임꺽정 같은 힘 센 젊은이보다는 다부지고 성실한 남자가 머슴으로 취직이 된다 하셨다.

 6척 거구 힘 좋은 사내는 추수 한 철 논에서 타작마당으로 볏단 나르는데 필요한 단기 아르바이트 일꾼이라 일자리를 상시 구할 수 없어 산적 질을 할 수 밖에 없다고 우스개 농담을 하셨다. 웃자고 한 말이지만 우리 문화가 획일적으로 갈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농경문화의 잔재도 한 몫 했다는 점을 강조한 말이다. 남과 다른 생각이나 행동으로 쓸데없이 튀는 사람에게 거부감을 가지는 DNA를 유전으로 받았다는 것에 수긍이 간다. 일 년 양식을 마련하지 못하면 가족 생계에 문제가 생기는 사태가 일어나는데 생존을 위한 양식 마련을 최우선으로 치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 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겠다. 우리가 산업사회로 넘어온 지도 한 세대가 흘렀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지구촌 인구의 대다수가 농촌에 살았다고 한다. 지금은 100명에 2명 내지 3명의 사람만 농촌에 살고 있다 하니 농업 기술의 발달은 자연환경을 극복하여 적은 농업인구만으로도 예전보다 풍부한 식탁을 차릴 수 있게 되었다. 농업 집약적 노동력이 힘을 잃은 사회가 된 것이다.

 지금은 물질은 풍부해졌지만 정신의 배곯이로 마음이 빈곤한 사람이 많아졌다. 거기다 치열한 경쟁사회가 화를 불러 생명을 상대로 한 끔찍한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 경쟁을 부추기는 강박 세상에 가끔은 쓸데없는 일로 세월을 낚아보는 것도 마음 다스리기가 되겠다. 효용보다는 가치나 의미를 찾아 해 보는 일이 당장은 쓸모 없어 보여도 세상에도 나 자신에게도 편하고 따뜻한 소통의 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삶이 부러워 보이는 것은 그들의 쓸데없어 보이는 삶의 모습이 진실로 행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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