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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오래 전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수업시간에 전기와 관련된 실험을 한 적이 있었다. 직렬과 병렬 회로 등에 대해 공부하면서 건전지와 꼬마전구를 이용하여 실험을 했었는데, 학급학생들이 대여섯 개 조로 나뉘어 둥글게 둘러앉아 진행되었다.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제대로 연결하면 꼬마전구에 빛이 환하게 켜졌다. 실험에 성공한 조의 학생들은 다들 신기해하면서 손뼉을 치며 즐거워했었다.

 실험에 실패한 조의 학생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문제의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함께 고민했고 문제를 해결한 후에 꼬마전구에 빛이 들어오면 역시 손뼉을 치며 즐거워했다. 직렬과 병렬 회로가 제대로 됐는지 아닌지를 전구에 빛이 들어오는지 여부를 통해 금방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단체나 기업 또는 국가에서 어떤 정책이나 프로젝트를 시행하고자 할 때에는 사전에 모의실험(시뮬레이션)을 거치는 경우가 많다.

혹시 ‘회로의 결함’이 있는지를 미리 확인하고 해결하기 위한 목적에서다. 조그만 손전등을 만들 때에도 그리고 커다란 원자력발전소를 건립할 때에도 수많은 사전점검과 모의실험과정을 거쳤을 것임에 틀림없다.

 일이 십년 전만 하더라도, 국산 제품의 품질이 선진국 제품에 비해 한참 뒤졌었는데 지금은 많이 향상됐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품질관리를 위해 기울여 온 줄기찬 노력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불량제품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최근에는 성능 미달의 방탄복 등의 불량 방산제품들이 양산됐다는 사실에 대해 국민들이 크게 분노하고 있다).

그런데, 통상 ‘제품의 결함’은 이를 발견하고 시정하는 데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실험과정이나 사용과정에서 그 결함이 쉽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문제는 ‘법과 제도의 결함’이다. ‘법과 제도의 결함’은 이를 발견하고 시정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리기 일쑤다.

그리고 그 결함들이 시정되기까지는 국민들이 많은 고통(불편과 불이익 등)을 겪게 된다. 법과 제도의 결함은 전구에 빛이 들어오는지 여부를 확인함으로써 직렬과 병렬 회로가 제대로 됐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것과 같이 금방 확인되지 않는다. 국민들이 그 결함으로 인해 받은 고통을 오래도록 수없이 하소연해야 비로서 국가가 겨우 문제점을 인지한다.

또 이를 시정하는 데 한참의 시간이 걸린다. 또한 이미 발생한 문제점들의 후유증을 해소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따라서, 국가가 어떤 법과 제도를 새로 만들거나 이를 변경할 경우에는 ‘회로의 결함’ 여부를 사전에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 말하자면 입법의 취지가 제대로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인지 그리고 부작용은 없을 것인지 등에 대해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스스로를 ‘다이내믹 코리아(Dynamic Korea)’라고 부르면서 외국에 그 ‘역동성’을 자랑삼아 홍보해왔다. 물론 우리 사회의 역동성이 많은 장점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법과 제도의 신설 또는 변경 즉 입법과정에 있어서는 ‘역동성’보다는 ‘신중함’이 더 큰 미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 해고의 기준, 취업규칙 변경 등 ‘노동개혁’이 우리 사회의 큰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데, 노사 간의 협상과 타협이 개혁의 내용을 정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지만, 노동개혁 입법의 골간이 노사 간에 이익을 주고받는 딜(Deal)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합리성(合理性)’이라는 기준, 학계의 의견, 글로벌 스탠다드(선진국의 입법례 등) 등이 충분히 참작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타당성(妥當性)과 실효성(實效性)의 측면에서 ‘회로의 결함’ 여부를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 추진하는 노동개혁이 ‘회로의 결함’으로 인해 실패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합리성’이라는 회로를 통해 ‘경제 활성화와 노사관계의 개선’이라는 꼬마전구에 빛이 환하게 켜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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