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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얼마 전 일본의 어느 지방을 지나다가 우연히 자위대의 훈련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장갑차부대의 훈련이었는데 직업군인들로 구성돼서인지 꽤 프로페셔널하게 보였고 첨단무기들이 섬뜩한 느낌을 주었다.

 이런 자위대가 해외 무력행사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는데, 지난 19일 아베 일본 총리가 이끄는 자민·공명 연립여당이 야당과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안전보장법제를 참의원 본회의에서 강행 통과시킨 데 따른 것이다. 일본 군국주의에 의해 직접적이고도 광범위한 피해를 입었던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정부가 외교부 대변인 논평을 통해 "일본이 집단자위권을 행사함에 있어서 한반도 안보 및 우리 국익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는 우리 측의 요청 또는 동의가 없는 한 용인될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분명히 밝힌다"고 강조했지만, 안보법안에 이런 동의 절차를 명시하고 있는 규정이 없다는 점이 신경 쓰이는 대목이다.

 일본은 2차 대전 패전 이후 제정된 헌법에 따라 자국이 공격당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무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전수방위(專守防衛) 원칙을 유지해왔다. ‘평화헌법’이라 불리는 일본 헌법 제9조에는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무력을 행사하는 것을 영구히 포기한다’는 문구가 명시돼 있다.

이 때문에 일본은 국제법상 모든 국가의 고유권으로 인정되는 집단자위권(밀접한 관계에 있는 다른 나라가 공격받을 때 무력 개입할 수 있는 권리)을 보유만 하고 행사는 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즉, 직접 공격받았을 경우에만 반격할 수 있는 ‘개별자위권’만 행사하고 ‘집단자위권’ 행사는 안 된다는 해석을 유지해왔다. 그런데, 평화헌법의 개정 추진이 여의치 않자 지난해 7월 각의(국무회의) 결정을 통해 집단자위권 행사가 가능하다는 내용으로 헌법 해석을 변경하는 변칙을 동원했다. 그리고 이번엔 국회에서 관련 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집단자위권 행사의 법적 근거까지 마련하게 됐다.

 이 법안의 통과로 인해 일본의 군사대국화, 중국 대(對) 미·일의 대립구도의 심화 및 군비경쟁 가속화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본이 자신들의 무력을 ‘자위(自衛)’를 넘어서 행사하게 될 때 세계 평화에 또 다른 ‘재앙(災殃)’을 초래하게 되지 않을까 심히 염려된다.

 아베 정권의 ‘독주(獨走)’는 일본인뿐 아니라 전체 아시아인 나아가 세계인들에게 ‘독주(毒酒)’가 될 수 있다. 일본 국민들이 스스로 자각하고 나서서 ‘제동’을 걸어주기 바란다. 예전 같으면 우리나라 대학생들과 시민들도 ‘일본의 안보법안 반대 시위’를 벌일 만도 한데, 조용한 걸 보면 우리 대학생들은 ‘취업’에 여념이 없고 시민들은 ‘생업’에 여념이 없는 것 같다.

 한편, 이 법안이 절대 다수의 법률전문가들의 ‘위헌’ 주장을 무시하고 국회에서 의결됐다는 점도 큰 문제이다.

 지난 6월 4일 중의원 헌법심사회에서 여당 측 참고인을 포함한 헌법학자 3명 전원이 법안을 위헌이라고 지적한 뒤 전직 최고재판소 장관(한국의 대법원장)과 전직 판사들, 전직 내각 법제국 장관, 대다수의 헌법학자 등이 위헌이라는 입장을 잇달아 표했다.

 법안 통과 후 일본의 헌법학자들이 대규모의 소송단을 구성하고 1천여 명의 변호사를 소송대리인으로 참여시켜 국가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고 한다.

 또한 일본변호사협회는 "입헌 민주주의 국가로서 큰 오점을 남겼다"는 성명을 발표했다고 한다. 아베 정권에 맞서는 양식 있는 일본인들에게 뜨거운 연대의 마음과 응원을 보낸다.

 아베 정권은 "법을 만드는 것은 정치이지만, 정치는 법에 기속(羈束)되어야 한다"는 말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일본의 법치주의 실패는 ‘법치국가’를 표방하는 세계의 여러 나라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일본에서 ‘법의 지배’가 온전히 지켜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살다가 ‘일본의 민주화’를 염원하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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