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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건태 사회부 부장

EBS가 수능대비로 오래된 고전문학 300선 중 오영수의 단편 「갯마을」을 소개한 적이 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읽어봐야지 하면서 천성적인 게으름 탓에 국어 교과서에 실린 옛 고전도 아직 손을 못 댔다.

 황금 어장을 남에게 내주고, 제대로 주인 행세도 못한 채 세금만 물게 된 인천의 한 섬마을을 찾아가며 얼핏 접했던 소설의 줄거리가 떠올랐다. 대충 줄거리는 스물을 갓 넘긴 보재기(해녀)가 고향인 제주 앞바다를 지킨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작품의 배경이 되었던 일제강점기 어린 해녀가 잠수기를 들여온 일본인에게 쑥대밭이 된 제주 앞바다를 지켜내는 모습이 감동적일 것이라 생각했었다.

 인천에서 뱃길로 1시간여 거리에 이작도란 섬이 있다. 과거 해적들이 은거해 ‘이적(夷狄)도’라고도 불렸던 천혜의 요새 같은 섬이다. 300여 명 남짓한 주민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옹기종기 모여 사는 이 섬에는 옹진군이 내준 키조개 양식장이 있다.

 하지만 수심 30~40m 심해에서 자라는 키조개를 채취할 잠수기(머구리)가 없어 외지인에게 바다를 통째로 내준 게 화근이 됐다. 섬 마을 촌로는 어차피 캐지도 못할 키조개를 외지인이 가져 간들 문제 될 게 뭐 있겠냐며 불편한 심기부터 드러냈다. 더구나 마을 발전기금이라도 받아 철마다 육지 관광도 하고 명절이면 마을 잔치도 벌였는데 ‘누이 좋고 매부 좋고’가 아니냐는 반응이다.

 그런데 소득세법 개정으로 올해부터 외지인이 캐간 키조개 수입이 마을 어촌계가 아닌 마을 주민 개개인에게 부과되면서 평온하던 섬은 삼촌과 조카까지 등을 돌려야 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당장 마을주민 절반에 가까운 70~80대 노인들이 이르면 내년부터 기초노령연금을 받지 못할 처지다.

 또 이들의 주수입원이었던 월 30만 원의 공공근로도 할 수 없다. 어쩌다 찾아오는 낚시객을 대상으로 잠자리를 내주던 펜션 주인도 간이사업자에서 일반사업자로 바뀌어 최고 70%까지 중과세를 물어야 한다.

 양식장을 임차한 외지 수산업자가 연 5천만 원 정도의 마을발전기금만을 내고 이곳 어촌계 몫으로 키조개 매출 수익의 절반인 16억 원가량을 소득으로 신고해 ‘세금폭탄’을 안겼기 때문이다.

 섬마을 주민 대다수가 어촌계원인 이들은 외지 수산업자가 자신들 어장에서 얼마만큼의 키조개를 채취해 팔았는지 알지도 못한다. 어장을 임대해 준 전·현직 어촌계장들이 뒷돈을 챙긴 게 아니냐는 의심에 마을 인심은 흉흉하다 못해 한겨울 칼바람이 부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세무서에 신고한 액수만을 놓고 볼 때 외지 수산업자들은 마을발전기금에 수십 배에 달하는 이문을 남겼을 것이란 짐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네 탓 내 탓’만을 하며 평생 근처에도 가보지 않던 경찰서와 세무서를 오가는 섬 주민들만 안쓰러울 뿐이다.

 한편으로는 자기들 밥그릇도 챙기지 못하고서 누굴 탓하겠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장 임대 과정에서 불법과 탈법이 있었다면 사법당국이 밝혀 줄텐데 웬 호들갑인가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들 역시 우리가 돌봐야 할 사회적 약자이고, 이들에게 맡긴 어장 역시 우리의 소중한 자원이라 생각한다면 결코 그들만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을 것이다.

 ‘자녀에게 물고기를 주는 것보다 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라’고 한 탈무드의 격언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채취도 못할 키조개 양식을 아무런 행정적 지원 없이 섬마을 어촌계에만 맡긴 것부터 분명 잘못일 것이다. 농지를 내주고 볍씨까지 뿌려줬지만 수확할 낫과 호미를 주지 않은 것과 다르지 않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은 제70차 유엔(UN) 총회에서 ‘새마을운동’을 국제사회에 전파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천명했다. 과거 농촌 근대화를 이끌었던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자’를 경제적으로 빈곤한 나라에 확산시켜 보겠다는 것이다.

그 전에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바라보는 우리 어촌의 현실도 돌아봤으면 한다. 새마을운동이 시작되기 그 이전인 50~60년대 심훈의 「상록수」같은 계몽운동까지 바라지는 않는다. 팔순을 넘긴 노인이 바다에 나가 굴을 따고, 환갑이 지나서도 마을 청년회 일을 돌봐야 하는 섬마을에 보다 세심한 행정당국의 관심을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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