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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채훈 삼국지리더십 연구소장
‘대중국 친화도시’를 선포한 인천이 처음 맞는 ‘인천·중국의 날 문화축제’가 막을 내렸다. 중국의 전통춤과 전통악기의 연주, 전통의상의 체험, 중국차(茶)체험, 한중 바로알기 퀴즈 행사까지 다양한 문화의 맛과 멋이 펼쳐졌다. 자유공원과 차이나타운 일대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축제가 성공적이길 기대하는 건 모든 사람의 한결같은 바람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화축제의 장(場)에 서 있는 왕희지 석상은 제대로 조명발이 못 미치고 있다. 중국이 낳은 서성(書聖), 일찍이 글씨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 한·위왕조의 비문을 연구해서 ‘해서’ ‘행서’ ‘초서’의 서체를 완성했다는 업적은 차치하고라도 그가 남긴 문화 예술적 향기는 실로 강렬하다.

나이 48세에 혼탁한 세상에 염증을 느껴 훌훌 벼슬자리를 내던지고 은둔생활에 들어가 회계 땅에서 산수를 벗하며 시우(詩友)들과 유유자적 교류를 즐기다 만든 작품 ‘난정서’만해도 그렇다.

글 내용은 ‘자연 속에 인생을 관조하여 비록 유한한 인생이지만 삶이란 충분히 고결하고 아름다운 가치가 있음’을 표현하여 중국인들은 무가지보(無價之寶), 즉 어떠한 가격도 매길 수 없는 보물로 여기고 있다. 물론 원본은 당태종의 묘소에 함께 묻혀 시중에 나도는 것은 모사품이다.

 더하여 왕희지에게는 재미있는 일화가 많다. 연못가에서 글씨 연습을 계속한 결과 연못이 먹물처럼 변해 사람들은 이를 묵지(墨池)라 하여 뜻을 소중히 여겼다.

그리고 거리를 지나다 부채 파는 할머니를 불쌍히 여겨 몇 종의 부채에 자신의 글을 써넣은 후 ‘이 부채는 왕희지 친필이니 100전 이하로는 팔지 말라’고 당부하여 할머니가 큰돈을 벌었다는 일화 역시 중국인들은 아름다운 이야기로 회자한다.

한중문화관 앞 쉼터에 서 있는 왕희지의 문화예술적인 스토리가 한·중 문화축제에서 충분히 반영되고 잘하면 상품성도 높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인천·중국의 근대사에 얽힌 깃발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차이나타운에 있는 화교중산학교 본관에는 ‘청천백일만지홍기’가 걸려 있다. ‘오성홍기(五星紅旗)’가 아닌 것이다. 국가를 상징하는 국기의 모태는 깃발일진대 단순히 중국기, 대만기로 이해하면 될까?

 중국에서 첫 국기(國旗)가 등장한 것은 1862년, 이름하여 ‘삼각황룡기’였다. 개항 무렵 인천항에 들어오는 중국 함선에서 펄럭이던 삼각기가 바로 이것. 1889년에는 사각기로 바뀌는데 풍도 앞바다에서 벌어진 청일해전 당시 청국 군함에 나부끼던 황색바탕에 용이 새겨진 사각 깃발이 그것이다. 황색은 중화, 중국민족을 뜻했고 용은 천자를 상징했다.

그러다가 1912년 신해혁명으로 공화정이 출범하면서 ‘오족공화기(五族共和旗)’가 등장한다. 이때 손문은 ‘청천백일기’를 주장했는데 결국 청천백일기는 군기(軍旗)로 사용되어 장개석이 이끄는 북벌군의 상징이 되었다.

1928년 국공내전에서 승리한 장개석은 오족공화기 대신에 청천백일기에 붉은색 바탕을 추가하여 ‘청천백일만지홍기’를 정식 국기로 정했다. 중일 전쟁시에 중국의 국기가 ‘바로 이것인데 백색은 민생(民生), 청색은 민권(民權), 적색은 민족(民族)을 의미하는 손문의 삼민주의 사상을 반영한 것이었다.

 1949년 10월 대륙을 점령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의 출발을 선포하는 모택동은 천안문 광장에 다섯 개의 별이 그려진 붉은 깃발 ‘오성홍기’를 내건다. 대만으로 쫓겨 간 장개석 정부는 청천백일만지홍기를 그대로 사용했다.

화교중산학교가 차이나타운에 세워질 때 중국은 장개석 지배하에 있었고, 해방이후 한국과 국교를 이어간 대만의 국민당 정부가 계속하여 학교를 후원해왔다.

이런 연유로 오성홍기를 달지 않고 아직도 청천백일만지홍기를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개항이후 인천의 앞바다나 차이나타운(중국조계지)에 나부낀 중국 국기는 모두 다섯 종. 근대사의 부침이 고스란히 담긴 이 역사의 과정을 중국인들이라 해서 모두 잘 알까. 아닐 것이다. 이번 축제를 한중 관계에서 ‘진정한 의미의 특화된 문화관광형 축제로 발전시켰다’는 유시장의 기념사에 혹여 빠진 것이 있지 않나 조금 되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 여겨 몇 자 적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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