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펜 끝으로 지역현안 밝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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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펜 끝으로 지역현안 밝히다
이슈로 되짚어보는 40년史
  • 이병기 기자
  • 승인 2015.10.08
  • 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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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명이 넘는 도시에 신문이 하나도 없다니, 이는 세계 유일의 비문화적 도시라는 얘기 아니냐. 언론 공백기를 맞아 모두들 허탈해 있을 때 비록 주간지이지만 ‘경기교육신보’가 창간했다. 당시로서는 이게 유일한 탈출구였는지 모르겠다."((사)인천언론인클럽이 발행한 인천언론사 중 ‘경기교육신보 탄생’ 편)

 우리나라 언론의 암흑기였던 1970년대, 전국에서 어떤 일간지나 주간지도 창간이 허락되지 않는 시절이었다. 이때 교육관계 특수지를 내세워 당국의 허가를 받아내는 ‘편법’을 동원해 1975년 10월 10일 ‘경기교육신보’가 탄생했다. 서강훈, 김경룡 등이 주축이 돼 1975년 9월 등록 허가를 받고 10월 10일 창간호를 발행한 경기교육신보는 유신 이후 전국에서 신문 잡지로는 처음 창간하는 기록을 갖게 됐으며, 현 기호일보의 모태가 됐다.

 본보는 기호일보사 창사 40주년을 맞아 그동안 경기교육신보와 기호일보가 조명해 온 인천·경기지역 현안들을 10년 단위로 돌아봤다.<편집자 주>

# 1975년 ~ 1985년 교육 특수지를 넘어 지역 언론의 사명 다해

 경기교육신보는 1976년 1월 1일자 신년호에 문교부의 제4차 교육개발 5개년 계획을 소개했다.

 당시는 초등학교까지만 의무교육이 시행되고 있었던 상황에서 정부는 1977년부터 1981년까지 이어지는 제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중 교육부문에 대한 목표로 중학교까지의 의무교육 연장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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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호신문 1988년 7월 20일자 1면.

 경기교육신보는 1981년도까지 의무교육을 중학교까지 9년간으로 연장하고, 육성회비와 수업료를 전액 국비로 부담하는 내용 등을 담은 정부 발표안을 소개했다.

 경기교육신보가 언론의 암흑기였던 1970년대 교육관계 특수지를 내세워 창간했으나, 교육 소식에만 국한한 것은 아니었다.

 경기교육신보는 1976년 10월 10일자를 통해 박정희 대통령의 국회 연설을 보도하기도 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국회 연설에서 기계공업을 핵심 업종으로 육성하는 등의 경제개발 계획을 발표했다고 경기교육신보는 보도했다.

 # 1985년 ~ 1995년 아침을 여는 신문 기호일보 창간

 기호일보는 1988년 7월 20일 지령 1호 창간호를 통해 지방화 시대의 길잡이가 될 것을 약속했다. 창간 사설을 통해 ‘民의 소리’가 곧 ‘神의 소리’임을 천명하고 본격적인 지방자치시대를 맞아 지역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전달할 것을 독자들에게 약속했다. 같은 해 8월 27일자 1면에는 남동공단의 배후도시 격인 연수 택지개발지구 착수 소식을 다뤘다. 현재 남동 인더스파크로 이름을 바꾼 남동공단은 인천지역의 핵심 공업지역으로 최근에는 첨단 산업체들이 다수 입주해 인천의 창조경제를 이끌고 있다.

 1993년 2월 23일자에는 동두천시의 동두천문화원 측이 규정된 정관을 무시한 채 총회를 개최한 사실을 폭로했다. 당시 문화원은 전체 성원 중 과반수 출석해야 총회가 성립한다는 규정을 갖고 있었지만 총회는 고작 9명이 참석했는데도 결산 보고와 감사 선출 등을 강행해 지역사회에 많은 논란을 낳았다.

 본보는 이 같은 지역 문화원의 도 넘은 시민 기만행위를 비판하는 한편 이를 감독해야 할 시의 책임 없는 자세에 대해 날을 세웠다.

 # 1995년 ~ 2005년 인천시민 대변자로

 기호일보는 1998년 12월 3일자 1면 머리기사를 통해 지난 1995년 3월 인천시로 편입된 강화·옹진·검단 3개 지역 환원을 주장하는 경기도에 맞선 인천시의 입장을 전달했다. 일각에서는 국가 발전의 도움을 위해 경기도 김포나 시흥·안산시로의 합병이 필요하다는 입장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하지만 당시 최기선 인천시장은 "합법적인 절차로 이뤄진 편입 절차를 재확인하는 주민투표 주장은 행정력 낭비와 함께 주민들의 반목 및 대립을 부추긴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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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호신문 1호.
본보는 또 사회면 지면을 통해 경인고속도로 서인천~도화나들목 구간 확장 개통 소식을 다뤘다.

 인천지역 주민들의 핵심 교통로인 경인고속도로는 현재 출퇴근 시간 극심한 정체로 고속도로의 기능을 못하는 데 반해 중앙정부는 1968년 제정된 유료도로법의 첫 대상인 경인고속도로 통행료를 여전히 900원으로 유지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선거 운동기간 인천을 방문해 경인고속도로 통행료 무료화를 약속했지만 아직까지 공약은 이행되지 않고 있다.

 # 2005년 ~ 2015년 인천 이어 경기도 소식까지 본격적으로 전달

 본보는 2005년 5월 6일 기존의 경기도 수원분실을 경기본사로 승격했다. 대한민국의 중심부 격인 경기도의 여론 전달과 지역 뉴스를 빠르게 전달하기 위한 취지다.

 이어 2006년에는 ‘기호일보 CI’ 변경과 함께 수원시 권선동 일원으로 경기본사를 이전했으며, 2008년 8월에는 경기본사 사옥을 지금의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일원으로 옮겨 도내 소식 전달에 앞장서고 있다. 아울러 최근에는 의정부시에 경기북부본사를 개소했다.

 광활한 면적을 자랑하는 경기북부지역은 그러나 상당 부분이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는데다 군 접경지역으로 인한 안보시설의 특성상 낙후지역이 많아 지역 발전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경기북부본사 개소로 지역주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다.

 본보 2008년 10월 2일 머리기사에는 2014 인천아시안게임 주경기장 신설 여론을 비중 있게 다뤘다. 인천지역 각계각층의 우려 섞인 주장을 전달하고 주경기장 신설을 위한 정부의 결단을 촉구했다.

이병기 기자 rove0524@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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